안타까운 사연
 처음 도박 중독 피해자를 만난 것은 가정폭력상담소에 있을 때였다. 그 가족은 어렵게 인공 시술을 통해 아이를 얻었고, 내가 돌을 함께 축하해 주고 식당을 개업했을 때 지인들과 함께 밥을 먹었던 집이었다. 남편이 카지노에 출입하면서 탄광에서 받았던 이주 자금까지 모두 날리고 유일하게 전세금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마저 빚으로 넘어갈까 봐 이혼을 하러 오게 된 것이다. 남편은 탄광에서 열심히 일했고, 가족에게 다정한 사람이었고, 성격이 밝고 쾌활해서 친구가 많은 사람이었다. 눈물을 흘리며 가족들을 길거리에 나앉게 할 수는 없으니 이혼을 꼭 해서 전세금이라도 지키고 싶다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도박 중독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 후 또 다른 지인이 도박 문제로 상담소를 찾아왔다. 두 사례를 통해 도박 중독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였고, 상담소를 그만두고 희망센터를 함께 만들어 지금까지 많은 도박 중독 피해자를 만나고 있다.

 대박의 꿈, 현실은?
 우리 센터에서는 지역 단체와 함께 2010년에 카지노 인근 지역의 도박 피해자 중 장기체류자, 속칭 카지노 노숙자 사례 조사를 하였다. 이 지역에 사는 이들이 1,000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누구도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우리 센터의 힘으로 전수 조사를 할 여력이 되지 않아서, 생애사, 도박 중독이 되는 과정, 도박 중독 이후 삶의 변화 등을 주제로 8명을 심층 면접하였다. 이 조사를 하면서 서로 부둥켜안고 많이도 울었고, 자신들이 한쪽으로 미루어 두었던, 돌아갈 수 없는 예전의 삶을 얘기하고는 잠을 거의 못 자고 다음 날 인터뷰에 응하기도 했다. 중독자 중에는 고학력자, 연구원, 공무원, 교사, 식당 체인점 8곳을 운영했던 사장 등을 비롯해 전문직 종사자도 많다. 도박을 몰랐을 때는 한 부분에서 일가를 이루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던 분들이다. 그러나 도박 중독이 된 후에는 도박으로 모든 것을 다 잃었지만 도박으로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식당 종사자나 배달, 숙박업소 종사자, 공사현장 인부까지 다양한 일에 종사하고 있다. 인력회사가 이 작은 동네에 4개나 된다. 일을 해서 돈이 모이면 다시 도박으로 대박을 꿈꾸며 카지노에 또 올라가는 삶을 살고 있다. 대부분 카지노 주변에 살기 때문에 주거와 직업이 일정하지 않고, 심리적 고립감으로 몸과 마음이 매우 불안하다. 연령에 비해지병이 많다. 하지만 주민등록 말소, 신용불량자, 의료보험금 미납 등의 이유로 제때에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폭력에 노출될 확률이 높고 국민 기본 권리는 전혀 누릴 수 없다. 도박 중독으로 전 재산을 날리고 지인이나 친척에게 경제적 손실을 입혔기 때문에 예전의 인간관계는 거의 단절되어 있다. 카지노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동병상련의 처지로 인해 서로 위로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힘은 언젠가는 카지노에서 대박을 터뜨려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과의 관계 회복도 지인들과의 만남도 단지 대박으로 돈이마련되면 모두 해결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돈이 마련되었을 때 떠날 수 있겠냐는 질문에는 그때가 되어야 알 수 있다고, 자신이 도박 중독인데 쉽겠냐고 답하였다.

 그들은 우리의 이웃
 이 조사를 마치고 내게 많은 변화가 왔다. 처음엔 상담자로서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조급함과 책임감 때문에 답답했었다. 그러나 작년 사례 조사를 하고 나서는 더욱 이들을 만날 때 편안하다. 편견이 없어지면서 친구로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으로 편안하게 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치도 나눠 주고 가끔씩 밥도 같이 먹고, 전화가 오면 반가운 마음에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들도 내 마음을 아는 것 같다. 멀리 가서도 가끔씩 전화해서 변화된 자신의 삶을 얘기한다.
 이곳을 떠나 직장에서 첫 월급을 타고 자기 방에서 따뜻한 밥 한그릇에 맛있는 반찬으로 저녁을 먹는 시간에 내가 생각났다고 전화를 해서 한참을 얘기한다. 나는 이들에게 자신이 스스로 마련한 방에서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먹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의미인지를 안다. 하지만 내가 한 사람을 도박 중독에서 빠져나오게 도와주고 있을 때 더 많은 사람이 도박 중독에 빠지고 있는 이 현실에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 우리 지역은 탄광이 문 닫고 카지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곳이다. 단지 먹고살기 위해 선택했는데 많은 사람이 병들었고, 자살했다. 도박 중독 피해로 자살하는 이들이 한 해에 30명 가까이 된다. 강원랜드 매출이 올라갈수록 도박 피해자들은 늘어 간다. 그것이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경제적인 이익이 먼저인 자본의 논리라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우리 지역에 카지노가 있고 카지노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하나의 인격체이고 하나의 귀중한 존재이며,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도박 중독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우리는 살면서 도박 중독에 대한 교육이나 성향 검사를 받아 볼기회가 없다. 평소에 화투나 카드를 사교적인 이유로 하기도 하지만 내가 도박 중독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누구도 알려 주지 않는다. 개인의 성향이나 유전적인 요인도 당연히 있겠지만 우리나라처럼 도박이 허용적인 나라에서 누군들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초등학교 앞 문방구의 뽑기 기계부터 거리에 널려 있는 사행성 기계들을 보라. 명절이면 가족들이 당연히 고스톱을 친다. 이를 도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청소년기에는 가장 많이 하는 도박이 카드이다. 부모는 아이들이 도박에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지 모른다. 도박 중독자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니다. 서서히 도박 환경에 노출되고 거부감이 없어지고, 성인이 되었을 때 상황이 되면 도박 중독자가 된다. 도박 중독을 개인 문제만으로 본다면 우리는 복지를 얘기할 필요가 없다. 같은 환경에 노출되더라도 어떤 사람은 이겨 낼 힘이 있고, 어떤 사람은 이겨 낼 힘이 없다.
 사회적 약자가 그것을 이겨 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이 복지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도박 중독이 질병으로 인정되지도 않고 있다. 병원에 입원하면 한 달에 200만 원을 내야 한다. 도박으로 모든 돈을 탕진한 이들에겐 참 어려운 일이다. 알코올 중독은 국립알코올병원, 30여 개의 알코올상담센터와 알코올치료시설, 재활공동체 등이 전국에 있다. 그러나 도박 중독은 치료하는 병원도 많지않고 상담소도 많지 않다. 도박 중독 피해자들은 점점 늘어 가고 폐해도 심각한데 정책은 아직도 느리게 가고 있다. 직업 재활을 원하는 분들도 있지만, 정책은 이제 겨우 시작 단계이다. 좀 더 속도를 내어 이들에게 행복한 삶을 줄 수 있는 시간이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

 * 희망센터는 2007년 카지노 인근 지역 주민들이 만든 민간단체로 후원금과 자원봉사로 운영하는 도박 중독 센터이다. 도박 중독 피해자와 가족 상담과 지원 활동, 도박 중독 예방 교육, 도박 중독 예방 캠페인, 조사사업 등을 한다(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19리 2반 (033)591-2221 이메일 : antidoba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