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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가난한 이들과 함께 키우라 - 몽테뉴 명문가 자녀 교육 배우기 | 2014년 5월호 34쪽
‘자녀를 어떻게 키울까?’ 하는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들의 공통적인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부모가 자녀에게 얼마만큼 강제를 가하느냐이다. 어떤 부모는 자녀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고 또 자녀를 최고의 환경에서 키우려고 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어느 정도 강제를 부과하고 또 자녀를 자신의 수준에 맞춰 키우되 특별한 아이로 키우려고 하지 않는다. 이 중에서 어느 쪽이 후일 더 성공적인 자녀로 성장할까? 물론 이에 대한 해답이 정해져 있다면 누구나 그 방향을 따르면 될 것이지만 자녀 교육에는 어떤 정답이 없다는 데 부모의 고민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480년 전인 1533년 프랑스 남부 지방 보르도에 사는 피에르에켐은 아들 미셸을 얻었다. 상업으로 부유한 집안의 이 아버지는 커다란 성을 사들여 귀족이 되었다. 아버지는 많은 학자들과 권위자들에게 아동 교육에 대해 문의했다. 그가 얻은 결론은 아이에게 최소한의 강제를 과하고 스스로 공부하고 싶어지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농민 자녀와 똑같이 키워 소박한 생활 방식 체득시켜
 먼저 피에르는 젖먹이 아들 미셸을 자신의 성안에서 키우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는 허름한 농가에 유모를 구해 놓고 젖먹이 아이를 보내 그 농민의 집에서 농민의 자녀와 똑같은 대우와 똑같은 음식으로 키우게 했다. 또한 아이에게 최하층민이 침례를 받을 때 침례반을 받들도록 시켰다. 아이가 농민 등 최하층민들과 애정으로 결속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라틴어 교육, 고전 독파의 길 열어 줘
 다음으로 아버지 피에르는 당시 유럽 교양층의 언어였던 라틴어를 아들이 고생없이 배우게 하기 위해 라틴어를 훌륭하게 구사하는 독일인 가정 교사를 고용했다. 미셸이 있는 데서는 누구라도 라틴어만 말해야 한다고 아버지는 명령했다. 그는 여섯 살이 되기까지 자신의 모국어인 프랑스어를 전혀 배우지 못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단지 이 방법으로 라틴어를 배운 결과 미셸의 라틴어 실력은 최고 수준에 올랐다. 보르도에 있는 학교에 입학했는데 아주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라틴어 교사들은 자신들의 완벽하지 못한 라틴어 실력을 미셸이 알아챌까 전전긍긍하며 두려워했다고 한다.
 또한 아버지는 잠에서 느닷없이 깨어나게 될 때 아이들의 ‘말랑말랑한 두뇌’는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믿고 악기 소리로 아이의 잠을 깨웠고 유모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일렀다. 그야말로 무척 세심한 아버지였다. 현대의 가장 진보된 교육도 이 보다 더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종교의 자유도 주었다. 아버지는 가톨릭이었지만 자녀들은 신교(기독교)를 믿었다. 이는 당시의 서구 세계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16세기 당시 프랑스는 신교에 대한 종교적 박해가 극심한 시기였다.

 프랑스 르네상스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사상가(문필가)가 되다
 이렇게 자란 어린아이는 훗날 보르도 시장에 선임되었고 문필가로 이름을 날렸다. 그가 바로 오늘날 산문 문학 형식의 전형이 된<수상록>의 저자인 미셸 에켐 드 몽테뉴(1533~1592)다. 그는 <수상록>에서 이렇게 말한다. “젖 먹는 동안 내내 그리고 그 뒤로도 오랫동안 농가에 살도록 하여 가장 소박하고 가장 평범한 생활방식을 훈련시키셨다. 아버지의 뜻은 내가 민중과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계급의 사람들과 동족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나에게 등을 돌리는 사람이 아니라 손을 뻗치는 사람을 보살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게 하셨다.”
 이어 그는 아버지의 계획은 성취되었다고 고백한다. “나에게는 힘없는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허영심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타고난 동정심 때문인데, 이러한 감정이 내 안에서 무한한 힘을 휘두른다.”몽테뉴는 법원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하다 38살 때 은퇴를 결심하고 성으로 돌아온다. 그는 전망이 좋은 탑의 4층에 서재를 만들고 38번째 생일에 서재 입구에 자신의 은퇴에 관해서 라틴어로 이렇게 새겼다. “궁정과 공직 생활에 오랜 세월 시달린 미셸 드 몽테뉴는 여전히 순수한 상태로 박식한 뮤즈의 품속으로 돌아왔노라. 온갖 근심을 털어 버린 고요함 속에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보낼 곳으로…. 그리고 그는 자유와 평정, 여가에 여생을 바치노라.”
 그는 이 서재에서 해박한 라틴어로 고전을 독파하면서 인간성의 탐구에 돌입한다. 그는 객관적인 인간 관찰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자아 파악에 나섰다. 그의 평생 화두는 ‘내가 무엇을 아는가?(Que sais-je?)’였다. 몽테뉴는 묻는다. “내가 고양이와 노닥거릴 때, 내가 더 재미있어 하는지 고양이가 더 재미있어 하는지 누가 알겠는가.” 그에게는 ‘서양 언어의 모험가’,‘문예 창조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몽테뉴는 서재에서 아버지의 지시대로 레몽 세봉이 쓴 <피조물에 관한 책(일명 자연신학)>을 번역한다. 그가 쓴 <레몽 세봉을 위한 변론>은 그가 쓴 에세이 중에서 가장 길고 가장 철학적인 작품이 되었다. 몽테뉴는 이 에세이에서 ‘사람은 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라고 증명하려 했지만 그 주장은 ‘사람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으므로 회의론이 유일한 학문’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만다. 결국 이 책을 쓰면서 자신의 좌우명을 만들 수 있었는데 그게 바로 ‘내가 무엇을 아는가?(Que sais-je?)’이다. 그는 이 번역본을 아버지가 돌아가신 바로 그날 아버지에게 헌정했다.몽테뉴는 평생 가난한 이웃들의 돌봄을 받으며 자란 어린 시절을 잊지 않고 가난한 이들의 벗이 되었다. 그의 책은 세상의 모든 가난한 이들을 위한 헌사였다고 할 수 있다. 몽테뉴는 자신의 <수상록>에 대해 “나의 책은 다만 ‘이웃과 친척, 친구를 즐겁게 해주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강조한다. 모든 수상록의 전범이 된 몽테뉴의 <수상록>은 바로 아버지에게서 잉태한 것이다.자녀를 키우는 ‘학부모’들은 자녀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늘 불안해한다. 이때 무엇이 자녀에게 참된 가르침인지 몽테뉴 아버지의 혁신적인 교육법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또한 38살에 은퇴한 몽테뉴에게서 자기주도적인 삶의 방정식을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자녀 또한 언젠가 사회적으로 은퇴해야 할 시기가 올 테니까 말이다.
 최효찬
문학박사, 자녀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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