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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평안 - paul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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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황토 집짓고 시골에서 살고 싶다
 사람이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사는 것은 최상의 건강을 실현하는 귀한 선택이다. 이번 강의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생활이 얼마나 우리의 건강과 행복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인가를 이해하는 전제아래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소박한 꿈을 그려보려고 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꿈이 아니고 생활 속에서 실현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황토 집짓고 시골에서 산다는 말 자체가 매우 소박하고 순수함을 풍겨준다. 환경오염이 비교적 적은 시골에서 황토와 나무로 집을 짓고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유기농으로 채소와 과일과 곡식을 가꾸어 먹으면서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고 싶은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을 아끼는 마음이 인간을 따뜻하게 대하는 삶에 익숙해지면서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웃과 함께 여생을 멋지게 살고 싶은 것이다. 황토 집을 짓고 유기농으로 야채를 가꾸어 먹으면서 자연을 즐기는 자연친화적인 삶이 주는 이런 유형적인 유익들은 물론이고 또한 노동의 축복, 진정한 자유의 체험, 그리고 바라봄으로 변화하는 참교육의 생활과 더불어 인간회복의 꿈을 실현하게 하는 무형적인 유익들을 우리의 삶을 최상의 기쁨으로 바꾸어 주는 요소들이다.
 
 신비의 흙
 흙을 아는 것이 곧 인생을 아는 것이다. 흙은 인생의 기원과 종말 그리고 현재의 존재이유를 보여준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인간의 죽음의 운명을 보여줌과 동시에 자연친화적인 삶의 희망을 일깨워준다. 그래서 흙을 말하면 친근감이 생기고 흙의 품을 파고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흙은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필요 되는 모든 요소들 곧 안정, 균형, 성실, 화합, 온화, 조화, 고결, 중화, 그리고 포용 등을 고루고루 가지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흙의 특징들이 인간의 행복과 건강과 질병치료에 너무너무 잘 어울린다. 특히 동쪽의 햇살을 가장 많이 받는 동 황토를 황토 증의 황토라고 하는데 만병통치약으로 통하는 햇볕처럼 풀 스펙트럼 라이트의 에너지가 듬뿍 스며있는 황토는 갖가지 치료의 효험들을 가지고 있다. 벌집구조의 수많은 공간을 가진 복층구조의 황토는 유익한 미생물 서식처이자 원적외선의 저장고이며 다양한 효소성분들을 가지고 있어서 혈액순환과 신경작용을 원활하게 하고 신진대사를 촉진시키고 면역성을 강하게 하여 암은 물론 각종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며 우리의 삶의 질을 최상의 상태로 높여준다. 이렇게 흙은 인간의 의식주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유형적 및 무형적 유익들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다.
 흙의 방사파장과 인체의 방사파장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원리이다. 인간의 자료가 원래 흙이라는 것과 함께 현재의 윤택한 삶도 또한 흙을 떠나서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황토 속에서 방사되는 원적외선은 우리의  건강과 활기가 넘치는 삶을 위하여 놀라운 작용을 한다. 인체 내의 수분을 알맞게 유지시키는 건습작용, 체온을 적정수준으로 유지시키는 작용, 인체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작용, 인체의 각종 영양을 분해하여 대사기능을 촉진시키는 작용, 인체 내의 노폐물 배설을 촉진시키며 냄새를 중화시키는 작용, 인체의 영양 균형을 유지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리고 인체 내의 모세혈관을 확장시켜 신진대사를 촉진시키고, 숙면을 도우며, 근육통의 통증을 완화시켜 주며, 혈액순환을 왕성하게 하여 성인병을 예방하며, 세포조직을 활성화시켜 생명 활동을 증진시켜주는 작용 등 그 효능이 매우 뛰어나 인간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유익한 소재이다.
  
 흙집에서 살고 싶다
 흙집에 살고 싶다. 옛날에는 흙은 사람들에게 주거생활에서 절대적인 요소였다. 우리 조상들은 흙을 이겨 방의 바닥을 깔고 천장을 이고 벽을 쳤다. 그것은 결코 원시적인 주거 형태가 아니었다. 나름대로 경험에서 나온 지혜의 결정체였다. 흙이야말로 우리의 기후 풍토에서 가장 알 맞는 건축재였다. 흙은 여름에는 남태평양의 뜨거운 열대 더위를 막아주고 겨울에는 시베리아의 차가운 한대 추위를 막아주는 이상적인 건축 자재였다. 흙은 사계절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고 여름철의 습기를 흡수했다가 건조한 계절에 뿜어내 준다. 또 흙 미립자 틈 속으로 바람도 스며들면서 환풍 작용도 잘 된다. 한마디로 흙은 여름은 시원하게 겨울은 따뜻하게 하는 이상적인 건축 자재이다.
뿐만 아니라 흙은 인체의 독을 제거하는 등 탁월한 약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약성을 가진 황토 속에서 생활함으로써 건강도 도모하였다. 그런데 점차 흙이 주생활의 중심에서 벗어나더니 이제는 그 모습을 찾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지금은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모두 시멘트로 집을 지어 살고 있다. 그것이 흙보다 더 인간의 주거 환경에 이로운 건축 자재여서가 아니다. 발전하는 문화생활 속에서 흙집을 가난의 상징으로 여기는 편견도 시멘트나 벽돌집을 선호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부와 편리함의 상징으로 흙 대신 시멘트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는 흙이 인간의 주생활의 원천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흙이 우리 고유 주거생활의 기본이라는 점보다는 인체에 유익을 주는 요소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찾게 된다.
 우리나라 흙집의 역사는 원시시대의 움집으로 알려진 수혈주거를 거쳐 신석기시대에 이르러 지상주거 공간이 만들어지면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당시에는 볏짚이 아닌 자연에서 쉽게 채취할 수 있는 억새풀이나 갈대 등을 이용하여 이엉을 엮지 않고 지붕 위에 두텁게 깔아 나뭇가지 등으로 눌러 놓거나 칡넝쿨로 동여매어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건강하게 살려면 흙집을 지어 사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 인간은 누구나 건강한 모습으로 가족들과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 이 중요한 목표일 것이다. 최근 들어 대도시를 중심으로 황토찜질방과 황토 방 아파트, 황토로 만들어진 각종 제품 등이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흙의 우수성과 함께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이 과학적으로 분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기오염이 심각한 도심지역 보다는 시골에서 포근한 황토 집을 짓고 가족들과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사람들에게 주어지길 바란다.

 흙집의 역사
 그러면 이제 흙 건축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흙집에 대한 선호도나 보편성은 단연 세계적이다. 지금도 전 세계 인구의 30%, 약 15억의 인구가 흙집에 살고 있다. 개발도상국에만 한정시켜서 본다면 50%이상, 과반수의 농촌인구와 약20%의 도시인구가 아직도 흙으로 만든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러한 수치상의 통계는 이미 여러 가지의 조사에 의해서 증명되어 왔고 인류의 문명 속으로 흙집의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일례로 페루의 60%의 건축물이 흙벽돌과 함께 담틀 공법으로 되어있고 르완다의 수도(Kigali)에는 38%의 주택이 흙으로 건축되었다. 인도에서도 72.2%의 주택이 흙을 건축 자제로 사용하였다. 이는 약 6천 7백만 채의 주택에 3억7천5백만 명이 흙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아프리카대륙에서는 대부분의 시골뿐만 아니라 도심의 주거까지도 흙을 사용하였다. 이곳에는 오래 전부터 언어의 다양성만큼 여러 가지의 세련되고 다양한 흙 건축 축조방식과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는 단순한 주택뿐만 아니라 시 청사, 법원, 도서관 등 공공시설들을 토속적인 심벽 구조체를 발전시켜 지역적인 환경에 조화를 이루고 있고, 가장 시급한 문제인 주택보급 문제에도 흙 건축이 매우 효과적인 대안으로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흙을 이용한 축조법들은 중동지역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란에서는 페르시아시대의 암굴주거를 통해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남예멘과 북 예멘의 여러 도시(Bam, Yard, Seojane, Tabriz 등)에서 흙벽돌로 된 궁륭과 돔 축조법 등을 통해 또 다른 흙 건축기술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남예멘의 쉬밤(Shibam)시에서는 10층 이상의 보쥬 방식으로 된 건물들을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하남과 상시 그리고 간수에서는 인구천만이상의 도시가 두터운 황토층을 파서 암굴주거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유럽에서는 여러 나라에서 농촌주택을 중심으로 흙을 이용한 축조법들을 전승시켜 왔다. 스웨덴, 덴마크,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의 거의 모든 나라의 농촌에서 담틀 방식과 심벽 그리고 흙벽돌로 된 주택들을 볼 수가 있다. 특히 18세기 프랑스의 코인테라우크스(Francois Cointeraux)가 포도 짜는 장치에서 착안하여 압축 흙벽돌을 만드는 기계를 고안해내고 그의 저서(nouveau pise)를 통해 담틀 공법의 다양한 축조법들을 소개하여 유럽전체의 흙 건축 기술을 한 단계 올려놓았고 흙 건축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었다. 하지만 1950년대까지 다시 잊힌 기술이 되었다가 2차 세계대전 후 흙을 건축적인 재료로서 다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연구와 개발을 시작하여 지금은 다른 건축소재들과 충분히 경쟁할 만한 수준으로 발전되어 있다.
 미국의 남동부지방에서는 흙벽돌을 이용한 환상적인 건축들을 볼 수가 있는데 1980년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흙집의 97%나 되는 약 17만 6천여 채의 흙집이 이곳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캘리포니아의 뉴멕시코 지방에 있는 48개의(1981년) 흙벽돌공장에서 매년 약 4백만 장의 흙벽돌을 생산하고 있고 매년 30%씩 생산량이 증가하고 있다. 이곳에는 산타페(Santape)라는 흙 건축 마을은 우리에게 흙을 이용한 전통적인 축조법이 현대까지 계승되어온 과정을 보여준다. 아도브로 만들어진 도서관이나 행정관서 그리고 현대적인 주택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담틀 공법을 이용한 현대적인 새로운 시도들도 계속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와 남미지역도 또한 흙 건축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많은 전통과 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페루의 안데스산맥을 중심으로 많은 지역에서 문명의 발상과 함께 수많은 도시들이 흙벽돌과 담틀 공법으로 지어졌다. 이러한 기술들은 중미의 멕시코에서도 발견되고 각기 지역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훌륭한 역사적 전통은 현대에서 다시 화려하게 계승되듯이 이곳에서의 흙 건축의 연구는 매우 놀라운 수준으로 주택뿐만 아니라 상업건물들과 공공건물까지 그 용도가 확대되고 있다.
 70년대 이후 에너지절감과 경제적인 측면에서 흙이란 소재에 대해 많은 연구가 선진공업국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흙벽돌과 담틀 방식이 이미 건축법으로 규정되어있고 여러 지역과 국가적 차원에서 축조방법들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흙의 단열효과를 증진시키기 위한 연구에 수백만 달러의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우선적으로 흙의 물성과 건축 소재적인 측면에서 과학적인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어오고 있고 여기에 매년 약 2천 4백만 프랑의 연구비가 투자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와 개발을 토대로 1982년 리온(Lyon)근처의 일레다뷰(lledabeau)지역에 도메인 델라테레(Domaine de la terre)라는 현대적인 흙 건축 마을을 건설하기도 하였다. 스위스와 벨기에와의 대학을 중심으로 한 공동연구도 진행되고 있고 체계적인 교육기관(CRA-Terre)도 현재 운영되고 있다. 흙은 앞으로 가장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건축적인 재료임에는 분명하다.
 
 어머니 품과 같은 황토 집
 흙집에 대한 이야기는 남의 나라만의 화재거리가 아니다. 고래로 황토 집은 여러 가지 우수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다. 황토집하면 은연중에 어머니 품처럼 포근함이 느끼게 한다. 마음의 고향 같은 그런 느낌이다. 싸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흙냄새 물씬 풍기는 헛간냄새, 잿간냄새, 이 모두가 초가의 정겨운 냄새들이다. 봄이면 장독대 주변으로 개나리가 만개하고, 여름이면 동구 밖에 늘어진 수양버들가지와 구슬픈 매미소리가 정감을 일으키고, 밤이면 모깃불 매운 연기를 마시면서 앞마당 멍석 위에 가족끼리 둘러앉아 한낮에 뒷밭에서 따다놓은 참외와 수박을 우물에서 건져다가 나눠먹으면서 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헤아리고, 가을이면 초가지붕 한 모퉁이에서 조랑 박이 익어가고, 텃밭에는 빨간 고추가 탐스럽게 달려있고, 고추잠자리는 머리 위로 빙빙 어지럽게 날고, 겨울에는 흰 눈 내린 지붕 밑 군불 지핀 아랫목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군고구마 벗겨먹으며 긴긴밤 식구들끼리 오순도순 정을 나누는 이러한 추억들을 생각하노라면 누구든지 자연을 그리워하며 자연과 함께 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초가집에서 탯줄을 자르고 흙먼지 속에서 뒹굴면서 온돌방의 열기를 받으며 자라난 세대들은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금방 향수에 젖어 눈시울을 적시게 될 것이다. 그 때가 정말 그리운 것이다.
 황토집의 건축자재는 우선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들이다. 흙, 나무, 돌, 짚, 그리고 물 등등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자연친화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자연적인 요소들에 대한 거부반응이 없고 금방 친숙하게 된다. 현대 주거의 가공된 건축자재와 제한된 공간에 비해 자연의 냄새가 물씬 풍기면서 사방이 확 트인 주거 공간 등이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고 삶의 여유와 자유를 주게 된다. 이와 같이 보잘것없는 흙집이 우리의 선조들에게 뿐만 아니라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잊히지 않고 늘 그리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러한 흙집의 매력이 항상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환경 친화적인 주택문화
 우리 조상들의 집은 주로 흙을 소재로 만든 초가집이었다. 나무로 골격을 짜고 벽은 외(畏)를 엮어 놓고, 겉에는 짚을 5cm 정도의 길이로 썰어 흙과 섞어 바르고 겉에는 고운 흙을 이겨 바른다. 지붕은 이엉으로 덮는다. 방바닥은 구들장을 놓고 흙을 바른다. 흙은 사계절이 뚜렷하여 기온의 변화가 큰 우리나라에서는 흙이 최상의 건축자재이다. 흙은 열의 차단 효과가 높아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주는 효과가 있다. 습할 때는 습기를 머금었다가 건조할 때 내뿜는 천연의 습도 조절기이기도 하며, 미립자 틈틈이 바람을 통과시킬 수 있기 때문에 통풍도 잘된다. 이렇게 기능적으로 우수한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흙집의 매력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마을 공동체가 함께 지었다는 것과, 무너진 뒤에도 쓰레기를 남기지 않고 완벽히󰡒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에 있다. 흙벽은 조금씩 계속해서 부스러져 떨어지기 때문에 끊임없이 손으로 메워 주어야 한다. 이렇게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다듬은 흙집은 온기를 가지고 살아 숨 쉬는 가족의 일부분이 되어 단순한 건축재료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황토 전문가가 제시하는 황토가 좋은 9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숨을 쉰다. 다시 말하면 공기가 잘 통한다. 유리그릇과 황토 그릇에 물을 담아 금붕어를 넣고 윗부분을 비닐 랩으로 씌워 밀폐한 뒤 120시간이 지나면 유리그릇 속의 금붕어만 죽는다.
 2. 습도조절 능력이 우수하다. 외부가 습하면 수분을 흡수했다가 외부가 건조해지면 수분을 방출하는 능력이 시멘트의 5배나 된다.
 3. 항균 효과가 크다. 황토 용기에 담아둔 물이 페트병, 플라스틱, 바이오 용기 등에 담아 둔 물에 비해 용존산소량이 많고 대장균 수가 훨씬 적었다.
 4. 곰팡이가 피지 않는다. 자연재료이면서도 화학재료인 시멘트의 효능에 뒤지지 않는다.
 5. 냄새를 없애는 효능이 뛰어난다. 시멘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탈취력으로 실내공간의 악취를 없애준다.
 6. 적조 방지능력이 우수하다. 청정해역을 훼손하는 미생물인 적조제거에 강력한 효능을 발휘한다.
 7. 방열 효과가 높다. 같은 온도의 열을 공급했을 때 시멘트보다 높은 온도를 방열한다.
 8. 온도를 지속성이 좋다. 난방을 끝내도 바닥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지지 않으며 실내온도를 유지한다.
 9. 원적외선 방사 량이 많다. 원적외선은 인체의 세포운동을 촉진함으로써 활력을 증진하고 신진대사와 혈액순환을 촉진한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초가집은 자연환경과 가장 잘 어울리는 집이다. 동그마한 지붕은 동네 뒷산을 빼 닮았다. 또 농사를 짓고 난 짚을 이용해 지붕을 얹고, 지천에 널려 있는 진흙으로 벽을 쳐서 만들었다. 집이 낡아 허물어도 쓰레기가 하나도 없이 모두 다 흙에 섞여 땅을 옥토로 만든다. 과연 이보다 더 환경 친화적인 집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조상들은 이미 수천 년 전 구들을 발명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냈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조상들이 구들을 사용할 무렵 일본에서는 ‘이로리’라고 하여 방바닥 한복판에 사각형으로 구덩이를 파고 나뭇가지를 태워 난방을 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대부분 실내에서 직접 장작을 피워 추위를 모면했었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구들문화는 상당히 수준 높은 난방양식이다. 난방과 동시에 취사를 할 수가 있고 재는 화로에 담아 손을 따뜻하게 하는 재료로 사용되었다. 옛날에는 솔가지, 섶나무, 나무뿌리, 낙엽, 잡초 등 노력만 하면 땔감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어 연료비 걱정은 전혀 없었다.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온 조상들의 지혜로운 모습이다.
 거기다가 구들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는 구들돌이나 황토라서 자연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가 있다. 구들돌은 구들방의 고래를 덮는 넓적한 돌을 말하는데 구조가 단단하고 넓적한 돌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산비탈에서 캐어 썼다. 이처럼 구들 돌 하나하나도 절대로 아무 것이나 쓰지 않는 정성을 쏟았으니 작은 돌 하나에도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두툼한 구들 짝은 방바닥 아랫목에 구들 고래를 덮었고 얇은 것은 윗목을 덮었다. 두툼한 돌은 오랜 시간 동안 열을 보전하기 때문에 아랫목이 그 따스함을 오랜 시간동안 간직하게 된다. 구들 돌 위에 황토를 한 치 정도 덮어서 평평한 바닥을 만들었고 황토에서 발생되는 원적외선으로 건강을 증진시키는 효과도 누렸다.
 오늘날의 온수 순환식 난방 구들은 바닥을 시멘트로 마감하여서 황토의 우수한 자연의 에너지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요즘 황토의 과학성을 인정받아 점점 황토온돌과 같은 바닥을 선호하고 있다. 우리의 구들은 상당한 열관리 지식을 보여 준다. 연기를 잘 배출하고 구들을 골고루 데우기 위해서 바람과 기후 조건을 잘 따져 아궁이와 굴뚝을 배치했다. 아랫목은 낮고 윗목은 높게 구들장을 놓고 아랫목에 두껍게 흙을 바르고 윗목은 얇게 발라 열전도율을 균형 있게 맞추었다.
 이런 구들이 갖는 장점은 무엇일까? 첫째, 난방의 효과가 높다. 이것은 인체가 구들 표면에서 방사열을 받을 때 인체가 느끼는 온도가 실제 온도보다 높기 때문이다. 둘째, 바닥 쪽이 따뜻하기 때문에 머리는 차갑고 발은 따뜻한 구조로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한다. 셋째, 과열되거나 불이 날 염려가 전혀 없다. 넷째, 실내에서 재나 먼지 등이 전혀 발생되지 않아 폐 기관의 건강에 문제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다섯째, 난방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의 우려가 없다. 오늘날은 난방을 위한 연료문제로 인한 환경문제가 심각하지만 옛날에는 그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나무를 재료로 하기 때문에 삼림문제가 있을 수도 있었지만 나무를 함부로 자르지 않았기 때문에 삼림황폐화의 문제는 없었다. 해외의 여러 나라에서 우리의 구들 문화는 인정을 받고 있다. 한 예로 프랑스의 건설시장에선 이미 우리의 온돌재료들이 유통되며 많은 선호를 받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선조들의 우수한 온돌 과학을 증명하는 한 단편이 아닐까 생각한다.
 주거환경이 현대화되면서 우리의 인체는 여러 가지 유해한 요소들을 일상생활 속에서 접촉하게 되었다. 소위 새집 증후군으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건강문제들이 현안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시멘트의 강알칼리성 성분으로 고형화되면서 인체에 유독한 독성물질을 배출하여 질병을 유발하게 되고 주택내의 가전제품이나, 비닐장판, 각종 플라스틱 제품은 우리 인체에 나쁜 전자파나 환경 호르몬을 분출하고 있다. 그리고 각종 오염된 자연환경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어 우리 인체의 자연 회복력은 나이가 들수록 둔화되어가고 마침내 혈액순환장애, 고혈압, 당뇨병, 두통, 관절염, 신경통, 각종 암 등의 만성질환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러한 오염된 환경에서 우리의 건강을 지켜 주는 황토찜질 방은 우리 인체의 자기 회복력을 높이는데 많은 효과가 있다. 기존의 찜질방은 대중을 상대로 영업목적으로 운영되었지만 가정용 황토찜질 방은 각 가정마다 2-3평 정도의 찜질시설을 갖추어 집에서도 찜질을 하고, 취침도 하면서 건강관리를 할 수 있도록 고안된 시설이다. 지금은 자연친화적인 발열 소재들이 개발되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시설을 갖출 수 있다.
 찜질 법은 인체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열에너지 형태로 공급하는 것이다. 열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인체에 침투력이 강한 원적외선을 필요로 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황토는 열을 가할수록 생명광선이라 불리는 원적외선이 다량 방출된다. 방사된 열은 우리 몸의 구석구석에 축적된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이물질 등을 분해하여 줌으로 상쾌함을 느낄 수 있다. 원적외선 방사체로서 게르마늄, 맥반석, 맥섬석, 옥, 황토 등 여러 광물질이 있으나 황토가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침투력을 가지고 있다.
 황토의 원적외선은 적외선 중에서도 가장 유익한 파장을 피부 깊숙이 스며들게 하기 때문에 황토에 열을 가하여 찜질을 하면, 세포활동 과정에서 열에너지를 발생시키면서 체온을 높이는 작용을 하여, 모세혈관이 확장되고, 혈액순환이 활성화되면서, 신진대사 촉진, 조직 재생력 증대로 자연 회복력에 현저한 효과가 있다. 이로 인해 많은 땀을 흘리게 되고 각종 유독성 물질, 노폐물, 중금속류가 배출되면서 혈액순환을 촉진하므로 혈액이 맑아지고, 인체의 산성화를 막고 약알칼리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인체의 항상성 작용이 정상화되면서 자연회복력이 강화되어 스스로 건강을 회복하도록 한다. 황토의 원적외선은 세정력, 분해력, 해독력, 제독력 뿐만 아니라 숙취해소, 통증완화, 중금속제거, 숙면효과, 탈취효과, 항균효과, 제습효과, 공기정화 효과가 있는 생명광선이다. 이러한 뛰어난 효력을 가진 황토를 소재로 하는 찜질을 생활화 할 수 있다면 자연적으로 질병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며, 현재의 질병도 빠르게 치유할 수 있게 된다. 대기오염, 수질오염, 농약의 다량살포, 환경호르몬 검출 등 환경오염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제 우리의 주택문화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즉, 가정마다 침실겸용의 황토찜질 방을 갖추어 가족끼리 돌아가면서 찜질을 하거나 취침을 하는 등 황토찜질을 생활화한다면 소중한 가족의 건강을 경제적으로 지켜갈 수 있을 것이다.
  
 토질 개선과 인간 회복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평생 흙 속에 묻혀서 사시면서 손마디가 굵어지셨고 얼굴 곳곳에 주름살이 늘어나셨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의 부모님을 말하는 것이지만 또한 여러분의 부모님이시기도 할 것이다. 이른 새벽이면 벌써 일어나셔서 들로 나가시고 저녁노을이 사라지면서 어두움이 짙어 올 때 집에 들어오셨다. 학교란 초등학교나 졸업하셨을까 말까 그래도 틈틈이 성경을 읽으시는 모습을 보곤 하였다. 아마도 성경을 읽으면서 한글을 깨우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당신들이 배움이 없으셔서 이렇게 땅만 파고 농사짓고 사는 것이 한이 되었든지 자녀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공부를 시켜 출세시키려고 비지땀을 흘리면서 살이 닳고 뼈가 부스러지도록 흙투성이가 되어 사셨다. 모처럼 새 구두를 사거나 난방 샤쓰나 양말이 선물로 들어오면 아껴두셨다가 아들이 오면 남김없이 다 내 놓으셨다. 당신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렇게 아끼면서도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남김없이 다 내 놓으셨던 것을 지금은 모든 것이 사랑으로 바뀌어 마음속에 느끼고 쌓이고 있다. 한 평생을 그렇게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면서 흙 속에 파묻혀 사셨다. 그러다가 마침 직장 생활을 시작한 아들에게서 호강을 받으실 만할 때에 먼저 흙으로 돌아가셨다. 지금도 생각만 해도 눈물이 앞선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논으로 밭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하여 아버지를 도와 온갖 힘든 일을 배우면서 따라 하였다. 흙을 만지며 일하는 것이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식을 위하여 일만 하고 사시는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여 그렇게 하였다. 집에 오면 책보자기를 던져 놓고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은 생각이 얼마나 간절했겠는가! 농촌에서 땅 파고 일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가를 시간이 지나면서 더 뼈저리게 느꼈다. 힘들게 일하는 것이 자주 고통스럽게 생각되었다. 때때로 일하는 것이 지겨웠다. 흙을 만지면서 흙 속에 파묻혀서 비지땀을 흘리면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 되는 것인가를 깨닫기 시작한 것은 그 뒤로 오랜 세월이 흘러간 뒤였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시해되었다는 비보를 전해 듣던 날 그 다음 해에 1학기와 2학기 모두 학기를 시작한지 1-2주일도 안되어 전국 대학에 내린 휴교령 때문에 거의 공부를 하지 못하였다. 학생이 없는 대학 교정을 지키고 시간을 보내면서 만감이 교차되었다. 참 교육이란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교육에 대한 서적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우리 대학이 가지고 있는 교육 이념에 대한 더 깊고 숭고한 뜻을 새롭게 되새기고 간직하는 기회가 되었다.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으로 잃어버린 인간의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참 교육의 목적이다. 전 존재적으로 인간 안에서 잃어버린 조물주의 형상을 회복한다는 사실은 이보다 더 귀하고 넓고 높고 깊은 목표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을 동시에 보여 준다. 참 교육은 교과서를 통한 교육뿐만 아니라 육체노동을 통한 일상생활의 체험은 물론 순결과 사랑의 정신을 배양하는 균형 잡힌 인간성을 완성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해 주었다. 흙을 만지면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가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자동차나 경운기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하늘과 땅이 맞닿는 골자기에 터전을 마련하고 농촌 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흙 속에 파묻혀서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이 인간의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가는 첫 걸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므로 이것을 몸소 실천하고 싶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고 틈틈이 일평생을 흙과 함께 살아온 이웃들과 한데 어우러지면서 비지땀을 흘렸다. 직장인의 건달 모습에 대한 오해를 벗어버리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땅을 파고 풀을 뽑아내고 귀한 곡식을 가꾸는 일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과였으며 무한한 인내와 신념과 노력을 요구하였다. 경험이 많은 주위 분들에게 묻기도 하고 관련 서적들을 통하여 배우기도 하면서 처음부터 유기농법으로 하는 농사를 시도하였다. 갑자기 화학 비료를 중단하고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었고 어쩌면 불가능한 일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최선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하는 소박한 꿈을 져버릴 수는 없었다. 기대에 어긋난 결과를 보면서 실의에 빠져 낙담하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시행착오는 때때로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되어 주기도 하였다.
 아마도 이렇게 2-3년이 지나갔을 때였다. 배추 잎에 메뚜기들이 날아다니고 흙 속에는 지렁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나중에야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지만 제초제나 농약을 제거한 뒤로 2-3년이 흐르면서 흙 속에 무수한 미생물들이 서식하게 되고 수많은 천적들이 생겨나서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결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제야 효소 처리한 퇴비를 많이 사용하면서 토양의 질을 바꾸어 가는 유기농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경험으로 알게 되었으며 아울러 토질개선이 체질개선과 똑 같은 원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신비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흙으로 빚어진 인간이 마침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은 죽음이라는 필연성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하나의 객으로 머물러 있는 동안에도 친환경적인 삶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는 귀중한 철학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가장 소중한 경험
 자연친화적인 삶이 주는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유형적인 유익들도 귀한 것이지만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은 사람으로서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런 자연 친화적인 생활이 우리에게 미치는 가장 의미 있는 삶의 체험과 교훈일 것이다. 자연친화적인 삶이 주는 이런 무형적인 유익들은 매우 다양하지만 우선 노동의 축복, 참된 자유, 그리고 바라봄으로 변화하는 참 교육의 체험을 간결하게 정리해 보려고 한다.

 노동은 저주가 아니고 축복이다. 사람들은 보통 땀을 흘리면서 일하는 것을 천하게 생각한다. 옛날 양반들이 세력을 잡던 시절에는 요즈음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선호하는 의사나 간호사나 약사와 상인 그리고 기술자들은 천대를 받는 직업이었다. 그러나 사유재산을 존중하고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사회에서는 돈이 많으면 왕처럼 살고 돈이 없으면 하루아침에 거지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잘 버는 사람이나 직업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벌려고 하고 할 수 있는 대로 쉽게 돈을 벌려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은 힘들고 돈벌이는 적은 노동을 백안시하게 되었다. 종교인들도 땀을 흘리면서 일하는 것은 죄를 범한 인간이 받는 벌과 저주로 생각하는 자들이 많았다. IMF 이후로 실직자와 점증하는 노숙자 문제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한번 쯤 이렇게 묻고 싶다. 경제가 어려워서 정말 일자리가 없는 것인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실업자가 늘고 취업이 어려운 지금도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워 외국인 노동자들을 사용하는 회사들이 부지기수이다. 땀을 흘리는 일은 싫어하고 쉽게 돈을 많이 벌려고 하는 생각과 자세도 실직자나 노숙자 증가의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농사를 지으면서 육체노동을 하는 것이 더 이상 천박한 일이 아니고 사람을 가장 복되게 하는 천직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농사가 안정된 복지사회 건설의 천하지 대본(天下之大本)이라는 것도 음미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육체노동은 우선 건강유지에 필수적이다. 걷기나 조깅처럼 건강을 위한 운동도 필요하지만 땀을 흘리는 노동은 육체건강에도 좋고 정신건강에도 좋다. 사람이 흙을 만지면서 일을 하는 동안 흙은 사람을 만든다. 땅을 파고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는 일은 힘이 들지만 인내와 성실 그리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중요한 교훈을 체험하게 한다. 마침내 수확의 계절에 느끼는 그 보람과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은 죄를 지을 시간이 없고 밤이면 단잠을 자게 된다. 스트레스로 고통하거나 공해에 찌들려 기침을 하며 병약한 생활을 할 필요도 없게 된다. 팥 심은데 팥 나고 콩 심은데 콩 나는 인과응보의 법칙은 정직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흙을 만지면서 땀을 흘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참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왕도 부럽지 않다. 자유란 인간의 가치 있는 삶에 있어서 매우 소중한 조건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직장에서의 상하관계와 같은 직장윤리를 잘 알고 있다. 직장 동료들 간의 상하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승진이나 직장 이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존심이 상하게 된다. 이런 소외와 불만이 해결되지 못하면 하루하루가 고달프고 한 맺힌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비록 영토는 작아도 자기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적어도 그 땅 안에서는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이다.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 나무를 여기저기 옮겨도 누가 시비하는 사람이 없다. 자기의 땅에서 이런 절대적인 자유를 경험하는 자들은 직장에 가서도 공동생활에 더 잘 적응할 것이다. 왕처럼 자유를 누린 사람을 종처럼 섬기는 일도 잘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상하종속관계를 떠나서 자기 홀로 살 수는 없으나 제한된 시간이기는 하지만 자기의 땅에서 지기의 뜻을 펼치면서 자기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분명 행복한 자들이다. 그들은 집에서나 밖에서나 언제나 행복을 만들고 행복을 나누는 평화의 사도(peace maker)가 될 것이다.
 바라봄으로 변화한다. 이것은 교육의 대원칙이다. 사람은 무엇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이에 상응하는 영향을 받게 된다. 도심지역에는 거의 모든 것이 다 인위적인 것으로 채워져 있다. 잘 포장된 도로, 상자처럼 쌓아올린 빌딩 숲, 주야로 찬란한 인공조명, 가로수나 정원의 나무도 다 다듬어 놓았다. 편리하고 이상적인 생활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교육적 효과에서는 자연환경과 비교하여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다. 눈만 뜨면 신록이 우거진 아름다운 숲과 산과 골자기에 흐르는 물, 그리고 지저귀는 새소리와 떠오르는 태양과 저녁노을, 이런 자연은 위대한 교육자이다. 왼쪽 두뇌만 발달시키는 교실의 주입식 교육 위주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천연계 속에서 지성과 인성교육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균형진 교육을 실행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 되고 있다. 교과서를 통한 지적 교육과 육체노동을 실행하는 노작교육 그리고 덕성을 중시하는 신앙교육이 잘 어우러진 전인교육은 이 나라의 미래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가장 바람직한 교육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학교는 노작교육과 함께 지성과 인성교육을 병행하여 전존재적인 인간회복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곳, 바로 아름다운 자연의 품속에 교육장소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환경건강이 중시되는 시대에는 교육환경 뿐만 아니라 개인이나 가정의 주거환경도 이런 교육적인 효과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흙은 인간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흙 속에 파묻혀서 온 몸이 땀범벅이 되어 삶의 한 순간을 보내노라면 흙은 우리의 어머니인 것처럼 어느새 우리를 감싸 안는다. 이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여유가 생기고 쉼과 자유가 솟구쳐 오른다. 아무에게도 어떤 간섭을 받지 않는 곳 그러면서도 가장 미미한 것일지라도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는 천연계의 품속에서 이제는 왕도 대통령도 더 이상 부럽지 않다.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 가는 것이다. 자연 친화적인 삶 속에서 사랑과 인정으로 얽혀진 인간의 원래의 행복과 존엄성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흙으로 돌아가라. 사람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이 달리 없으리라. 이런 자연친화적인 삶의 자연스런 결과는 최상의 건강과 행복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면 건강이 보인다.
작성자 : paul kim        2011-12-06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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