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로그인
|
|
|
|
|
|
|
|
|
|
정무흠 - moohum
프로필
행복한 삶
전체 - (412)
미분류 - (412)
행복한 삶 > 전체
그 영광의 빛 속으로! 제 5부 감사의 노래 - 박옥종 집사님 자서전(정무흠 목사의 어머니)
그 영광의 빛 속으로! 제 5부 감사의 노래 - 박옥종 집사님 자서전(정무흠 목사의 어머니)

1 장

1. 감사의 노래

나는 흑암 속에서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외로운 여인이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내겐 절망만 있었다. 그 절망의 늪에서 헤메던 내게 하나님은 빛을 비춰주셨다. 내 연약한 시력이 익숙해지기까지 서서히 서서히 더 밝게 비춰주신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며 나는 눈을 뜨기 시작했다. 어둠에 익숙했던 한 영혼을 광명한 빛 가운데로 이끄신 그 인자하신 손길을 가슴 깊이 느끼며 믿음의 영아기를 벗어나고 유년기를 지났다. 그리고 이제 소년기를 지나 청년기에 접어들어 나를 광명한 영광의 빛속으로 이끄신 그분을 찬양하고 싶은 마음 더욱 간절했다.

내 생명 다하는 날까지 감사의 노래 불러도
어찌 내 가슴에 가득한 감사를 표현 하리

주님은 사랑이시라
자신을 희생하여 나를 살리신 그 사랑
그 생명 바쳐서 나를 구하여내신 그 사랑

이 무가치한 인생에게 생명의 빛 보내셔서
영광의 빛 속으로 이끄신 그 무한한 사랑

어둠 찌든 가슴 환하게 열어주시고
풍성한 사랑의 광선 구석구석 비추사
모든 어둠 몰아내게 하신 주의 손길

눈물로 얼룩진 네 가슴 속을
명주 수건보다 더 부드러운 주의 손길로 닦아주사
모든 얼룩 깨끗이 지우시고 주의 향기론 말씀 새기셨고

네 머리 속에 남아있던 무섭고 두려웠던 추억들
주의 영 임하사 사라지게 하시고 신선한 성령의 바람 불게 하사

향기론 추억의 꽃 더욱 생생하게 하시며
네 가슴에 미래를 향한 소망과 포부로 가득케 하셔서
그 날을 위한 기대 속에 젊음이 넘치는 생애가 열리리라

주 다시 오시리라!
그 영광의 날 위하여 예비하라
어둠 속에 있는 자들에게 주의 빛을 비추라!


2. 생명 싸개 속의 생명

삼상 25:29
이사야 43:2-3

나는 내가 살아온 생애 동안에 생명 싸개 속에 싸여 있는 한 생명을 보았다.

그는 영아 시절 참으로 심각한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상태에 이른 일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 그러면서도 그는 용케 살아남아 유년기를 지나고 소년기를 맞이하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고기 잡으러 강에 갔다가 물에 빠져 익사할 위기에서 겨우 살아났다. 굶주림을 경험하면서 소년기를 지나 청년기에 접어든 의과대학 시절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의 문턱에서 다시 한 번 구원함을 받았다. 의과대학 졸업 후 서울 위생병원에서 인턴으로 일 할 때, 비행기를 타고 무의 섬 진료 갔다가 비행기 추락으로 비행기가 대파되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 후에 도미하여 미국에 살면서 세 번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다 무사하였다. 2001 년 2월 5일, 그는 신장 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계란만한 암이 한 콩팥에만 머물러 있고, 전이되지 않아서, 콩팥 하나만 떼어낸 후, 하나님의 은혜 속에 뉴스타트 건강생활을 하며 건강을 회복하였다.

2008년 11월 17일 그는 다시 한 번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이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죽었을 사건에 직면하였다.

며느리가 아기를 낳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으니 도와달라는 기별을 받고 아들 집으로 가게 되었는데, 눈보라가 치던 그 저녁, 얼어붙은 고속도로를 운전해 가던 그의 승용차가 갑자기 미끄러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큰 트럭이 포효하는 맹수처럼 그의 자그마한 승용차를 덮치려 하는 바로 그 순간, 운전대를 잡고 있던 그의 아내는 예수님! 예수님! 부르짖었다.

하나님의 천사의 손과도 미지의 거대한 힘이 그의 승용차를 트럭의 면전에서 낚아채어 고속도로 옆 갈잎 속으로 밀어 넣는 순간, 그 거대한 트럭은 눈바람을 쌩! 휘날리며 지나가버렸다.

그와 그의 아내는 머리카락하나 상하지 않았고,자동차도 긁힌 데도 없었단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로다.” 시편 107:19-21

나는 하나님을 잘 알 지 못할 때 결혼을 했고 잉태하였다. 스무 살에 잉태하여 스물 하나에 아들을 낳았다. 태중일 때, 친정아버지께서 태교를 잘 해야 한다고 교훈해주셨다. 어떻게 생활해야 되는지를 가르쳐주셨다. 생각을 바르게 가지고 깨끗한 음식을 먹고 자세도 바르게 하고 걸음걸이도 바르게 하고,좋은 책도 읽어야 된다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교훈을 따라 태교하였다. 그 때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성경에 대해서도 들은 적이 없었음으로 위인들의 전기를 읽었다. 나는 하나님을 알고 난 후에 사무엘서를 읽으며 아들에 대한 태몽을 회상하였다.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 그 어미가 매년제를 드리러 그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사무엘 상 2:18-19

사무엘의 어머니가 매년제를 드리러 그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아들에게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주었다는 말씀에서 나는 나의 아들에 대한 태몽이 연상되는 것이었다.

그 태몽은 이러하였다. 여남은 살은 되었음직한 준수한 소년이 단정한 한복 차림으로 의연한 자세로 앉아 있는데 내가 그에게 내 손으로 지은 겉옷을 공손하게 바치는 장면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아들에 대한 그 태몽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으나 가끔 그 태몽을 회상하곤 하였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 한나가 그 아들 사무엘에게 한 정성스러운 헌신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한 충성된 마음이었고 그러므로 그의 아들이 이스라엘 역사에 가장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 중 한 사람이었으며 이스라엘을 구원한 선지자였다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나도 나의 아들이 그러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으로 살기를 간절히 빌며 열망한다.

참으로 그는 그렇게 살아야만 하리라! 그를 여러 번의 위경에서 건져주신 주님은 그를 특별히 사랑하시고 보호하사 그분의 생명 싸개 속에 항상 그를 싸서 지키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찬양하리로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여기 덕적도로 무의촌 진료를 떠난 선교 비행기 천사호에 대한 그 당시 월간지에 실린 글을 읽어본 추억을 옮겨본다.

천사호는 수륙 양용 비행기였다. 천사호는 예정한 시간에 덕적도 해안에 착수하였다. 탑승자는 의사와 치과의사와 간호사와 미국에서 온 사진기자 이렇게 네 사람이었다. 해안에는 아무 사람도 없었다. 천사호는 덕적도 상공에 다시 떠서 상공을 한 바퀴 돌며 섬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온 것을 알리려고 했다. 덕적도 골짜기에서 비행에 어려움을 주는 기류가 올라온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다. 덕적도 상공을 선회하던 비행기는 강한 바다 바람에 휘말리며 자그마한 돌산에 곤두박질쳤다. 섬사람들은 천둥같은 굉음을 듣고 헐레벌떡 산을 치달았다. 탑승자들이 다 죽은 줄 알고 달려온 그들은 대파된 비행기 옆에서 무릎 꿇고 기도드리는 네 사람을 발견하였다. 미군 헬리콮터가 그들을 김포 공항을 실어날랐다. 김포 공항에서 그들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공항직원들이 긴장하고 들것을 대기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을 때, 한 사람, 두 사람, 자기 발로 뚜벅 두벅 헬리콥터에서 내리는데야 입을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텔레비전, 라디오 방송국 기자들의 사진기 셔터 소리들...김포공항 기획실장실에서 기자들과 인터부 때 기획실장이 말하기를 “비행기 사고 사상 유례가 드문 일입니다.” 했더란다. 덕적도에서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뉴스를 듣고 그의 아내는 두 아이를 하나는 업고, 하나는 손을 붙들고 그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가면서 “나는 아이들 데리고 콩나물 장사라도 해서 살아가겠지만 우리 어머니는 어떻게 해”라고 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하나님은 연약했던 나에게 너무나 자비하셨다. 내가 놀랄까봐 나를 피신시켰던 것이다. 나는 부산에 살던 딸의 해산 바라지를 위해 딸네 집에 가 있었다. 어느날 사위가 친구가 알려주었다면서 처남의 비행기 추락 사고가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보도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즉시 아들네 집에 전화하였다.“어머니 제 손가락 하나도 다치지 않게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셨습니다.” 하며 아들이 상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말하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그가 암으로 수술을 받았을 때도 나는 한국에 나가 있었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내게 일체 알리지 않아 나는 전혀 알지 못 하고 그 사건이 지나갔다.

3. 재물과 나

마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마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만 열 살이 된 아들과 아직 만 여섯 살도 되지 못한 딸을 시어머님께 맡기고 떠나던 날 새벽, 나는 친정에 들려 친정어머니와 함께 경부선 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하였다. 친정아버님께서 병상에서 일어나셔서 나를 보시고

“네가 어린 자녀들을 두고 객지에 간다는 말이 웬 말이냐!” 하셨다.

눈물어린 아버지의 그 음성이 질주하는 열차 소리 속에서도 들리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나를 당신의 장조카 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 당신이 낳으신 9 남매의 자녀 중 단 하나였던 애지중지 키운 딸을 홀로 객지에 보내기가 안쓰러워 긍휼로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지키며 부산까지 내려가셨다.

남부민동 외사촌 집에 여장을 풀고 외숙모님 방에서 기거하게 되었다.

나는 음력 9 월생, 외사촌은 12 월생이어서 달 맏이로 내가 누님 격이었지만 외사촌은 내게 항상 누님, 누님 하면서 깍듯이 존대어를 쓰고 마음을 다하여 나를 섬겨 주었다. 외사촌동생의 댁도 나이가 아직 어렸지만 도량이 넓고 이해성이 많아 그녀의 최선을 다하여 나를 섬겨 주었다.

내 형편이 좋아서 하숙비를 넉넉하게 내는 것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쌀이나 보리쌀 대두 두 말(서울서는 네 말이 됨)을 내는 것뿐이었다. 외가에 있는 동안 외사촌 내외의 너그러운 성품 덕분에 나는 마음 편히 지날 수 있었다.

첫 돌이 가까워오는 벙싯벙싯 웃으며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잘 생긴 첫 아들과 외숙모님, 네 식구가 마련한지 얼마 안 되었을 새집에서 살고 있었다. 결코 넉넉한 살림이 아니었을 텐데 그들의 마음만은 부자였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자기들은 고기반찬 안 먹어도 어머니 상에는 항상 생선이라도 떨어지지 않게 하는 효자, 효부였다. 그들이 복 받게 될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외사촌 가정에서 함께 지냈던 날들은 내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나는 외사촌내외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나는 그 시절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들과 살았던 것이다.

내가 부산에서 생활하는 동안“미나까이”라는 부산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 있었다. 거기 미용학원을 개설하였다. 나는 나의 자녀들과 함께 사는 것이 소원이었으므로 추석에 집에 돌아갔을 때 친정아버님께 의논을 드렸다. 그랬더니 아버님께서

“네 자녀들이 무엇을 보고 자라겠느냐?” 고 말씀하셨다.“

그 후에 우리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의 교사로 부임하여 얼마 동안 교편생활을 하였다.

삯바느질, 도부장수, 참기름 장사, 학교 교사, 가정교사, 계란 장사 등등...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한 가지 직업을 오랫동안 계속하지 못하고 바꾸어야 할 일이 자꾸 생겼지만 모든 일에 열성을 다했으므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되며 후회되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과로한 것과 건강을 해칠 정도로 먹지 않고 저축하려고 했기 때문에 훗날 자녀들에게 걱정하게 하고 고생을 많이 시켰던 잘못이 후회스럽다. 나는 6. 25 후에 아홉 가지 직업(?)을 가져보았으나 돈을 모으지는 못했다. 뼈 빠지게 일한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뼈 빠지게 일했어도 내가 모은 돈은 쓸 사람이 따로 있었다. 아등바등 아끼고 잠도 자지 않고 일하며 먹을 것도 안 먹고 쓸 것도 안 쓰고 모아도 내 것은 되지 않았다. 그 모든 고난의 세월이 끝난 후에 나는 비로소 하나님 앞에 굴복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로 영접하고 나는 1 주일간을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십시오.” 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셨다. 나는 감격의 눈물과 함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다.

“뜻대로 하옵소서. 모든 것을 주께 맡깁니다.” 하고 기도드릴 때 나는 주신 응답의 말씀을 인하여 뜨거운 눈믈을 흘렸다. 그 말씀은 평생을 나의 지표가 되어 나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다. 무엇을 염려하겠는가! 그 말씀이 여기 성경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으며 내 마음 속에도 기록되어 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마 6:33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한 계단, 한 계단 나를 이끄셨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뜻을 세운 내게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손길을 볼 수 있는 안전한 길이었다. 나의 자녀들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건강하게 바르게 자라주었다. 우리는 엘리사 선지자의 생도였던 사람의 과부가 경험한 그런 경험도 하면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기적 속에서 두 아이가 하나는 의과 대학을 하나는 간호학교를 졸업하는 날을 맞이했고 둘 다 가정을 이루고 손자녀들(grand children)을 보는 영광의 날을 누리게 되었다.

이 세상의 재물은 내게 인연이 먼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게 모든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셨다. 나는 내가 어려울 때 날아 가버렸던 그 재물이 하늘에 저축되어 있을 것을 안다. 이 땅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재물이 내 것이 아님을 성경 말씀에서 배웠다. 날마다의 생애 속에서 나와 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기 소원하며 재물에 대하여 하나님의 재물임을 명심하고 주신 재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를 소원한다.

4. 자아와의 투쟁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 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5)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사람이 평생을 사는 동안이 하루하루의 생활이 마치 쟁투와 같다고 하겠다.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살 동안에는 그 이치를 잘 몰랐지만 하나님을 믿고 사는 생애가 시작된 후부터 나는 내 날마다의 생활이 결전장에 서 있는 나날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선을 행하고자 하되 해가 저물어 잠잘 시간이 되어 무릎 꿇고 주님 앞에 아뢸 때면 자신의 패배의 기록을 가지고 후회하며 통회하며 용서를 빌 때가 많았다.

무엇 때문이었는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고 무덤에 장사 되었어야 할 자아가 아직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실로 나의 생애에 있어서 자아와의 투쟁은 가장 치열한 투쟁이었다. 실패하고 또 실패하며 나는 하나님 앞에 울부짖었다. 참으로 나는 그 간교한 사단의 올무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연약한 내 자아를 이용하여 끊임없이 나를 노리고 있는 원수의 궤계를 원수를 이기신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물리치고 싶었다.

새벽마다 나는 갈라디아 2 장 20 절의 말씀을 외우고 또 외웠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새벽마다 갈 2장 20절을 외우고 또 외워도 자아는 살아나는 때가 있어 쓴 잔을 마시게 하는 사건들이 일어나거나 내 마음에 평안이 깨어질 때가 있었다. 나는 무시로 자아가 꿈틀거릴 기미만 보이면 말씀의 무기로 대항하였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히 12:4)

참으로 그러했다. 내가 이제까지 자아와 싸웠다고 하나 나는 나를 죄 가운데로 이끌어 들이는 자아와 피 흘리기까지 투쟁하는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에베소서 6 자에서 내가 주 안에서 내가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

에베소서 6장 10절~17절

“1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하나님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내가 피 흘리기까지 치열한 싸움을 싸워도 이루지 못했던 그 일을 이루셨으며 이루고 계시다. “노년의 자기 관리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성경 100독을 시작한 후부터 나의 자아와의 투쟁은 하나님 손으로 넘어갔다. 이제는 내가 싸우는 싸움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싸워 주시는 싸움이 된 것이다. 나는 주님 안에서 남마다 감사하며 찬양하며 살아가는 기쁨의 생애를 살아가게 되었다. 할렐루야!

양심의 소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도록 양심을 주셨다.

우리가 그 양심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면 우리 양심은 예지로 밝아지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신다.

한 번, 두 번, 양심의 소리에 반응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다 보면

점점 양심의 음파는 가냘파져서
들을 수도 없는 상태에 이를 것이다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 심금을 울리실 때
우리 양심은 깨어나 우리에게
바른 길을 알게 하시니
양심의 소리를 듣는 일을 등한히 하지 말아야겠다

우리가 날마다의 생애에서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며
순종의 생애를 사는 것은 축복 받는 길이다

주 예수님,
소녀의 양심의 음파를 더 잘 듣도록 깨워 주시고
온전한 순종의 생애 살게 하소서


“미소로 보시는 하나님의 시선”

철없는 어린아이 같은 이 죄인을
언제나 바로잡아 주시며
뒤뚱거리면서도 주님 말씀에 힘 얻고
다시 일어나 걷는 모습을
미소로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시선은 언제나
사랑과 자비의 시선

못난 인생일수록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 걷는 인생일수록
더욱 긍휼히 여기시고 어루만져주시는
아버지의 시선을 느끼며
용기를 얻고 걸어갑니다.

이 세상 험한 길에서
아버지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어찌 다시 일어나 걸었으리이까?

모든 사람이 날 버렸어도
주님은 여전히 나를 바라보십니다.

오늘 나 미소로 보시는
하나님의 시선 느끼며 이 세상을 살아가렵니다.

5. 노년의 자기 관리 어떻게 해야 하나?

2008년 10월 30일 나는 캘리포니아로 여행했다. 외손자 벤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손녀 집에 여장을 푼 후 11월 2일 손녀 내외와 증손녀와 함께 결혼식장에 갔다. 아름답고 감사가 넘치는 결혼식을 마치고 손녀 집에 돌아와 일주간을 머물다가 9일 일요일에 미쉬간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곳에 머무는 동안 아픈 사람들의 소식을 들었다. 특별히 치매 때문에 고생하는 노인들에 대한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슬픈 마음이 되었다. 인생이 겪는 깊은 슬픔이 온통 내 마음을 사로잡아 나는 깊은 시름에 사로잡혔다. 치매로 고생하는 어머님을 생각하며 눈물이 글썽글썽한 그분의 따님을 보며 한없이 슬펐다. 젊은 시절의 그 의연한 자세와 믿음은 간 곳 없고...양로원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는 그 분을 생각하며...

나는 며칠 동안을 앓았다. 마음이 아프니 몸도 아팠다. 누가 장수는 축복이라 했던가? 건강 없는 장수는 결코 축복이 아니다. 영과 혼과 몸이 다 건강하며 장수해야 축복이라 할 수 있으리.

나는 캘리포니아에서 돌아온 후 주님께 이렇게 기도드렸다. “사랑하는 주님, 어서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 마치고 조용히 잠들게 해주세요.”

나는 참으로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주께서 분부하신 일 때문에 그 숙제를 풀지 못 한 불충성한 자가 될까봐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같이 사는 손자 부부를 위하여 무슨 요리인가 만들어주고 싶어 부엌에 서서 일하고 설거지도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서 타이프도 치고 책상 앞에서 성경을 한 시간 이상 읽을 때가 많다. 일을 하든지 책을 쓰고 나면 어깨와 목이 아파온다. 특히 목이 더 많이 더 자주 아프다. 아픈 것과 투쟁하려 해도 견딜 수 없어 김 장로님이 가르쳐주신 척추 교정하는 운동을 한다. 매일 매일 나의 낡은 몸과 투쟁하며 하루해가 간다.

요즘 내 눈은 한결 아픔이 완화되고 나를 잘 도와주고 있다. 많이 아프던 귀도 가끔 경미한 경고의 기별을 보내오지만 그런대로 잘 견뎌주고 있다. 그렇게도 저리던 다리도 이제는 잘 나를 지탱해주고 있고, 디스크인 내 허리도 그렇게 큰 통증을 알려오지 않는다. 그럭저럭 나의 매일의 생애는 그런대로 견딜만한데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나의 모든 조직이 다 느려졌다는 것이다. 두뇌도 빨리 회전되지 않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신체조직 전체가 이완된 것 같다. 거기 따라 반갑지 않게 빨라진 것은 소변을 배설하고자 하는 욕구와 물을 마시고자 하는 욕구만 증가하여 밤이고 낮이고 자주 소변을 보아야 하고 목말라서 물을 마셔야 하는 것이다. 내가 젊은 시절에 몸을 잘 관리하지 못하고 과로하고 제 때 먹지 못하고 잠자는 것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고 밤새기를 보통으로 하고 건강 법칙을 생각조차 않고 살아온 과거를 몇 번이고 주님 앞에 용서를 빌었다.

참으로 하나님은 자비하셔서 나의 기도를 들으셨고 나의 다리 저리는 것도 낫게 하시고 목 아픈 것도 낫게 하셨다. 나는 걸을 수 있고 차를 타고 장시간 여행해도, 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을 해도 즐겁게 여행할 수 있게 해주셨다. 30대부터 목이 아파{이것도 과로 때문에 얻은 병이었다.} 1절만 노래 부르고2절부터는 부를 수가 없을 정도로 아플 때가 많았었는데, 주님은 목 아픈 것을 낫게 해달라는 기도도 들어주셨다.

30대부터 70대까지 기도해도 여전히 목이 아팠었는데, 80대에 들어서서 눈이 좋지 않아 책을 읽고 싶어도 못 읽는 동생의 댁을 위하여 1년가량 걸려서 큰 책{대쟁투총서} 10권을 녹음하고 나니{처음에는 목소리 때문에 고쳐 녹음하고 또 녹음하고 했었지만} 어느덧 4절까지 노래 불러도 목이 아프지 않게 회복되었다.

나는 결코 내 목소리를 고치기 위해 녹음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마음씨 고운 동생의 댁을 사랑했기 때문에 진정으로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동생의 댁에 대한 사랑이 나를 격발하여 틈만 있으면 녹음을 하게 하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내가 동생의 댁을 도와준 것이 아니라 동생의 댁이 내게 큰 공헌을 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소원하고 소원하던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다는 그 소원을 성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로 근 50년간 나는 목이 아파 고생해 왔던 것이다. 나는 여러 번 하나님께 “주님,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고 싶사오니 이 아픈 목을 고쳐주세요.”하고 기도드렸었는데 마침내 기도 응답을 받게 된 것이었다.

40년 이상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면서도 내 품성은 변화되지 않은 것을 시시로 보게 되니 참 안타까웠다. 사도 요한처럼 예수님을 닮고 싶어 나는 요한복음을 외우려고 마음먹고 NIV 영어 성경1장을 필사하여 걸을 때마다 가지고 다니며 외우려고 노력하였다.

첫 번째 필사한 것이 닳아서 헤어져 두 번째로 필사하여 그것도 닳았으나 아직 외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하다간 요한복음 전체 암송이 언제 끝날지 까마득했다. 이제 나는 다른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이제 내 두뇌로는 암기한다는 것이 너무 어렵고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100번씩 읽기로 했다.

나는 새벽마다 성경1장{1 Chapter}을 열 번 이상 소리 내어 읽었다. 100독이 끝나갈 무렵엔 은혜가 넘쳤다. 요한복음100독이 끝나고 요한 일, 이, 삼서, 요한계시록 100독을 마치고 나니 감개무량하였다.

신약복음 전체와 내가 좋아하는 구약의 책들을 다 100독하려면 내 생전에 마칠 수 없다고 깨달았다. 이제 내 나이가85세인데 내가 잠드는 시간이 올 해 임할는지 내년에 임할는지 알 수 없으니 50번씩만 읽기로 했다.{더 많은 책을 읽기 위해}

그러나 마태복음에 들어서서 5장에서는 도저히 50번으로 그칠 수가 없었다.나는 산상수훈을 이때까지 읽어왔고 들어왔지만 이번만큼 큰 감동을 받은 적은 전에 결코 없었다. 나는 흐느껴 울면서 주님 앞에 자신을 회개하였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복음 5:48

이 말씀 앞에서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명시하신 그 귀한 교훈의 말씀을 진정으로 따랐는지 자신을 돌이켜보며 참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마태복음 5장은 100독을 하고 나도 만족할 수가 없었다. 외워서 내 마음에 거울이 되게 하여 날마다 그 거울에 내 마음과 언행을 비추며 생활하겠다고 느꼈다.


노년의 자기 관리법 어디서 나와야 할 것인가?

기필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와야한다고 느꼈다. 스스로의 생각에서 연유된 자기 관리는up and down이 심하기 때문이다. 진동이 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길을 겸손한 마음으로 따라가는 것이 가장 마음 놓이는 안전한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23:2-3

노인이 되면 자칫 자기 연민에 빠지기 쉽다. 자기 방어하려는 신경만 날카로워져 젊은 사람이 냉장고 정리하며 잔소리를 하면 이제는 말할 힘과 용기는 없어졌는지라 슬픈 마음이 되어 내가 왜 여기서 잔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하는고? 멀리 떠나야지. 어디로 갈까? 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5,60대에는 잔소리 듣기 싫어 다투기도 하다가 70대에는 멀리 떠나고 싶은 병을 앓다가 80대에는 철이 좀 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며느리 잔소리도 꽃노래로 들리게 되었다. 사람 사랑하는 사랑이 특심한 며느리는 자기 몸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큰 아들의 집에 가서도 부엌에만 섰고, 우리 집에 와서도 부엌에만 섰다. 작은 아들에게도 몸이 가루가 되도록 헌신한다. 가족들을 위하여 철철이 나는 과일을 복숭아, 살구, 포도등등을 주말이면 2시간이나 상거가 있는 곳에서 달려와 U Pick해서 나누어준다. 어떤 때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딸에게까지 보낸다. 때마다 요리하여 가족에게 봉사하고서도 설거지까지 자기가 하여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나는 그녀에게서 지극한 사랑을 보았다. 사랑에 격발되어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저렇게 쉬지 않고 일하는구나 하고 눈물겨운 감격의 눈으로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며느리가 무슨 말을 하든지 감사한 마음으로 듣게 되었다. 내게 관심이 없다면 왜 내게 이것저것 말하겠는가? 그래서 올해 들어 근래에 와서 더욱 깊이 나의 자부가 이 세상 사람들 중에서 제일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임을 진심으로 느꼈다. 내게 항상 부드럽게 말하는 남이 효자라고 부르는 아들보다도 며느리가 더 나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나는 주 안에서 참으로 행복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척추 때문에 요즘 목이 특별히 많이 아프고 여기저기 불편할 때가 있지만 김 용삼 장로님이 가르쳐주신 운동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 또 얼마 전에 이 정라 사모에게서 운동을 배워서 그것도 하고 있으니 그것도 유익하리라 생각되며, 또 작년 여름에 한국에서 다니러 오셨던 김근순 집사님이 네가지 운동을 가르쳐주어서 그 운동도 하고 보건체조도 하고 있어 요즈음 몸이 많이 유연해진 것 같고 발과 다리에 쥐가 나던 증세도 가시어 내가 생각하니 화가 복이 된다는 말과 같이 노년에 평안하게 쉬고만 있으면 각 기관이 활동할 기회를 잃고 잠자고 모든 것이 둔하여 질텐데 몸이 아프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이 운동 저 운동 각 지체를 움직이게 하니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축복이라 생각되었다.

내가 예수님을 닮고 싶어 성경을 암송하고자 뜻을 세운 날부터 내게 축복이 넘친다. 날마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대로 사는 것이 노년의 최선의 자기 관리법인 줄 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감사하라!


6. 믿음과 승리

오늘 아침에 나는 마태복음 8 장을 읽었다. 8 장 2절로부터 4절 가운데서는 한 나병환자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

2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그 나병환자는 믿음이 있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라는 그 말에 온 힘과 온 생명과 온 소망을 걸어서 탄원했을 것이다. 며칠 전 7장 읽기를 마치고 8장을 읽기 시작한 날 환자의 탄원과 예수님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는 말씀에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주님의 인자하심은 한이 없으시다. 마가복음 5장 34절에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하신 말씀이 있다.

참으로 그 여인이야 말로 절망 상태에 있는 여인이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인이었는데

막 5:26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28“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 33 ”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 34”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하셨다.

마가복음 10 장에는 51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댜”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소경 바디매오의 믿음의 행동은 46절에서부터 50 절까지 생동감 넘치게 묘사되어 있다.

눅7: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눅가복음 7 장 48 절에 등장한 여자,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는 말씀을 주신 여자는 막달라 마리아였다. 죄 중에 빠져 헤어날 길 없던 그 여자에게 “네 죄 사함을 얻었다는 말씀은 구원의 기별 곧 복음이었다. 그리고 다시 50절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는 말씀은 그녀에게 믿음으로 말미암는 승리를 선포하는 복된 소식이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병든 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는 기별도 그러하였다. 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기별, 곧 복음은 믿음의 승리를 선포하는 기별이었다.

내 생명이 생사의 경계선에서 곧 숨이 멎을 것 같던 그 순간, 바로 그때에 하나님은 꺼져가는 작은 생명의 불씨를 돋우셨다. 맹렬한 광풍 앞에 꺼지려는 작은 촛불 같은 나의 생명을 긍휼의 눈길로 지키시며 작은 믿음의 불씨를 불어넣으셨다. 죽음의 마수의 제물로 낚아채워지려던 그 순간에 나는 정신이 났고 내게 맡겨진 어린 생명들을 기억하였다. 나의 생명을 다섯 해 동안만이라도 연장시켜 주시라는 나의 심중의 처절한 부르짖음은 응답되었고 과분한 은혜 속에서 나는 이제까지 살고 있다.

진실로 모든 소망이 끊어진 죄인이었던 내가 작고 작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불렀지만 하나님은 거기 응답하셨고 나의 믿음의 불씨를 돋우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셨다. 참으로 나는 내가 주 안에서 행복자가 되었음이 하나님의 지극한 은혜임을 고백한다. 내게 아무 공로가 없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계속 나를 이끌어 주셨고 가르쳐 주셨고 지켜 주셨고 잘못 할 때 훈계해주셨다. 나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 속에서 자라났다. 하나님의 도를 배우는 과정에서 느리고 지혜롭지 못하고 되풀이 되풀이 똑 같은 실수를 하기도 하였으나 하나님은 오랫동안 참아주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믿음에 굳게 서게 될 때까지 기다리셨다. 하나님은 참으로 인내심이 많은 아버지셨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보배로운 믿음을 인하여 나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에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전진할 수 있었으며 내가 풀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에도 주님께 아뢰어 그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고 내게 불가능하게 보였던 큰일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거듭거듭 탄원하며 용기를 가지고 시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시는 것을 보았다. 내 수중에 돈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학업을 이루도록 해주셨다.

아들이 미국 의사시험에 합격한 후 미국으로 들어가려고 준비 중이었으나 그에게는 최소한의 돈도 가져갈 여유가 없었다. 물론 병원과 계약하고 가는지라 비행기 표도 보내왔고 7월부터 일은 시작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앞날에 대해선 염려가 없었으나 5월 14일에 떠나야 하는 그에게는 최소한 월급을 받을 때까지의 생활비가 필요했다. 그래서 아들과 며느리는 내게 자기들이 부득불 얼마간의 돈을 빌려야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들은 만사에 엄마와 이야기 하지 않고는 일을 추진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빚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기다리라고 했다.

너희들이 이자 빚내는 것을 하나님이 원치 않으신다. 그러니까 기다리라. 너희가 떠나기 전에 너희가 필요한만큼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다. 언제나 우리 기도를 들어주셨던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들어주실 것이다. 믿음으로 기다리라. 엄마가 기도하겠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며칠 후 아들이 기쁜 얼굴로 퇴근하였다.

“어머니, 참으로 어머니 믿음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였다. 그의 이야기인즉 오늘 병원에서 비뇨기과 과장님이 자기 집으로 점심식사를 같이 들자고 초대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 과장님이 자기도 멀지 않아 도미하게 될 것인데 가져갈 수 있는 금액이 제한되어 있어서 혹 닥터 정이 돈이 필요하면 필요한만큼 가져가서 쓰고 언제든지 형편이 될 때 갚아주면 고맙겠다고 부탁하였단다. 물론 무이자로...우리는 이것이 우리의 믿음의 기도에 대한 응답임을 확신하고 감사 기도드렸다.

참으로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셨다. 언제나 우리 믿음대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하고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우리 생활 전반에 관하여, 우리 심중의 상태에 대하여,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맡기는 모든 일에 대하여 책임져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최선의 열매를 맺게하실 수 있으시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 17:20

부족한 자가 하나님 안에서 승리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경륜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패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으니라.” 고린도전서 1:27-31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자, 약한 자, 천한 자, 멸시받는 자, 없는 자, 이런 핸디캡을 가진 자를 택하셔서 거듭나게 하시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우리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우리의 승리의 면류관을 주께 드리자! 우리로 존귀한 신분이 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자! 할렐루야!


7. 평화와 천국


*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신다.
* 평화로운 안식처에서 살기를 원하신다.

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불화와 소란,온통 소용돌이치는 듯한 이 세상에서, 불안감에 흉흉한 인생에게 하나님은 평화의 기별을 주셨다.

이 평화의 기별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있었다.

내일 일을, 아니, 일 순간 후의 일도 예측할 수 없는, 돌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는 이 세상에서 평강(평화)의 사람이신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다는 것은 얼마나 큰 은혜인가!

미가 5: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 떼에게 먹여서 그들로 안연히 거하게 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이사람은 우리의 평강이 될 것이라

에베소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나는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신 평화를 선포하며 이 땅에 오셨던 평강의 왕 예수께서 하신 약속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요한 복음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세상이 어지러워도 우리에겐 피난처가 있다. 예수께서 초청하시는 말씀이 여기 있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누구나 다 그분께서 주신 평화로운 피난처로 들어갈 수 있다. 부자이건 가난하건, 신분이 낮건 높건,피부색이 백색이던 유색이던, 동양 사람이건 서양 사람이건, 무슨 언어를 쓰건, 몸에 헨디켑이 있건 없건 그런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다만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그 초청에 응하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수십 년 교회에 다녔다 해도 마태복음 11:29의 말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하신 주님의 뜻에 부합하는 쉼을 얻지 못한다면 혹 그곳에 들어갔다 해도 적응하지 못하고 불협화음만 일으키다가 튕겨져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예비할 수 있는 이때에 최선을 다하여 예비해야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 22:20 에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는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신 말씀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다 심상치 않은 징조들을 인하여 긴장상태로 있을 때가 많은데 아직도 예수님을 모르는 복음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신속히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에스겔 33:2~16의 말씀에는 파숫군으로 택하심을 입은 사람은 파숫군의 직책을 충실히 행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고 또한 파숫군이 경고의 나팔소리를 분명히 내어야 할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

평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모시고 우리는 평화의 사람이 되어 주 예수께서 건설하신 평화의 왕국, 천국의 시민이 될 것이다. 내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진 사람은 누구든지 천국 백성이 될 것이다. 할렐루야!

나는 날마다 주 예수님을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기다림

주여 언제 오시렵니까?
설레임 속에 기다립니다

문 열어놓고
하늘에 떠가는 구름 바라보며
서 있는 마음……

하루가 천년같이 기다리실
주님 마음 헤아리며 눈물겨워질 때
문득 향기로운 바람처럼 임하시는 주님

내 두 팔 하늘 높이 뻗고
부르짖다가 잠드는 밤이면
꿈속에서도 오아시스처럼 나타나실 주님

내 힘과 정성, 생명 다하여 섬길 내 주
그 이름 예수!

그 이름 부르며 무릎 꿇을 때
평화 가득 가슴에 넘치네

기다림 속에 오늘도 해가 가누나
언제 오실지 나 몰라도

분명히 오실 그 날 위해
오늘도 마음끈 동이고 난 살리라


천국이 이루어감

지금 나는 나의 옆에 있는 두 쌍의 원앙과 같은 아들 내외와 딸 내외를 바라보며 지나간 날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들 내외와 딸 내외가 다 결혼 초 시절부터 원앙 같은 관계를 유지한 것은 아니었다.가끔 맞지 않은 때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며 서로 용서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포용성 있는 부부 관계를 보며 이제 그들의 사랑은 원숙의 경지에 이르러가고 있는 것을 본다. 그것은 나의 마음에 얼마나 큰 화평과 행복을 주는지…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나는 안다.

아들이 학업을 마치고 서울로 가게 되었을 때 나는 대구에 남겠다고 했다. 아들이 공부하는 동안에는 내 도움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같이 살았지만 이제 내가 없어도 아무 염려없이 잘 살 것을 나는 믿었고 한국에 “청상과부 며느리 못 거느린다.”는 말이 있는데 청춘에 홀로 된 사람이 행여라도 자부와 불화해서 아들에게 근심을 끼칠까봐 나는 두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진작부터 혼자 살기로 마음에 다짐하고 있었다.

이제는 아들에게 할 내 책임을 다 했고 인간으로서 내가 할 도리를 다 했으니 나는 이제 물러나도 되겎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이제까지 내가 하던 대로 몇 학생을 가르치며 살 수 있을 것이고 가까운데 가족들과 친척들, 친구들도 있고 친지들도 많았고 내가 다니는 교회가 있었다.이제는 딸도 시집 보냈고 내가 남편을 잃은 후 자녀들에게 부모로서 해야 할 책임은 다 하였으니 나는 여기 남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아들과 며느리는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 , 이제까지는 제가 어머니 사랑만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가 어머니께 보답해야 할 차례인데 왜 이러십니까? 왜 이렇게 저를 슬프게 하십니까? 저도 어머니께 효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시오. 어머니가 안 가시면 저는 너무 슬플 것입니다. 아기의 재롱만 보아도 어머니 생각이 날 것이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어머니 생각에 목이 메어 잘 먹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아들이 여러 말로 내게 호소해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며느리가

“어머니가 안 가신다면 저도 안 가겠습니다. 여기서 어머니 모시고 살겠습니다.”

하며 내가 자기들과 같이 가지 않으면 자기도 남편따라 가지 않겠다는데야 나도 나의 고집을 꺾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의 생애의 기록은 내가 예상했던 바와는 다른 기록으로 나오게 되었다. 같이 살면서 며느리와의 사이에 가끔 trouble이 생기기도 했다. 나는 시어머님께 한 마디도 못하고 죽어 지내는 며느리였지만 나의 며느리는 나 같은 소극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말도 잘 하고 이야기도 재미있게 잘 하는 사람이었다. 나같이 할 말도 못하고 지내는사람이 아니고 마음에 있는대로 쏟아놓는 사람이었다. 가끔 둘이 다투기도 했는데 극히 사소한 일 때문이었다. 예를 들자면 나물 삶아 담궈 놓은데 햇볕이 든 것을 손자를 업고 부엌 앞을 지나다가 본 내가

“나물에 해볕이 들었구나. 그늘에 좀 옮겨놓아라.” 한다든가 하면

“내가 들어놓으려고 하고 있는데 …..”
하면서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예”하면 될 것을 가지고 왜 그렇게 대답하니?” 하면 말이 오고 가게 되는 것이었다.

우리 사는 집이 바로 교회당 밑에 있었으므로 나는 새벽과 저녁에 꼭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하였다.그런 날 성전에 올라가서 주님 앞에 무릎 꿇으면 할 말이 없었다. 참으로 유구무언(有口無言)이 되고 만 나는 자아를 제어하지 못한 죄인이 주님의 영광을 가리운 것이 죄송하여 끝까지 사랑으로 말하지 못한 자신을 아픈 마음으로 책하며 주님 앞에 용서하여 주시기를 빌며 집으로 돌아와 며느리에게

“내가 네게 끝까지 사랑으로 못한 것을 용서해 다오”하고 나의 잘못을 사과했다. 주님은 내게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셔서 내 심령을 깨우치사 나의 잘못을 깨닫게 하셨다. 그렇게 여러 해 동안 지나는 가운데 며느리도 자기 잘못을 고하며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직 아들이 한국에 있을 때 어느 날, 아들이 며칠 만에 집에 들어왔다. 같이 저녁식사를 하고 또 예배도 드린 후 나는 내 방으로 건너왔다가 할말이 생각나서 그들의 방을 녹크 했을 때 며느리만 아기하고 방에 있었다.

“애비는 어디로 갔니?”
“이제 집에는 안 들어 온대요.”

그 말을 하는 며느리의 기색이 좋지 않았다.

‘둘이서 다투었구만 …’하고 속짐작을 하고 내 방에 돌아왔다. 새벽 4 시에 성전에 올라가 기도 드린 후 첫 버스를 타고 병원 앞에서 내려 아들 방 문 앞에 섰다.

녹크를 하자 아들이 문을 열었다. 문 밖에 선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며

“이 새벽에 어머니께서 왠 일이십니까? 목욕탕에 오셨습니까?”하고 물었다.

“아니다. 너를 만나려고 왔다. 네가 집에 오지 않겠다고 했다며? 송자는 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효부다.””

그 말만 하고 떠나려고 하는 내게 아들이 빛나는 얼굴로
“정말 어머니께 그렇게 잘 합니까?”

“그럼 그렇지 않고…내가 언제 네게 거짓말 하더냐?”
“오늘 저녁에 집에 가겠습니다.”

나는 두 말 않고 돌아서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과 헤어져 5 년 반이 지난 후 미국으로 들어와서 다시 아들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때도 아들과 며느리의 간청으로 이민수속을 시작했었다.

내가 미국 생활 벽두에 아들에게 한 교훈이 있다.

“하나님께서 몸도 약하고 마음도 약한 하나님의 딸을 마음이 너그러운 너를 택하셔서 너로 하여금 사랑하며 아끼며 보호하도록 맡기셨으니 네 아내를 네 평생 사랑하고 보호해야 할 것이다.”

그날 아들은 내게

“어머니, 감사합니다.” 하고 나의 교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는 매일 직장에서 돌아올 때마다 기쁨이 넘치는 목소리로 “My darling!”하며 부른다. 그 소리를 들을 때 나는 저절로 미소가 나온다.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 만큼 행복한 남자가 또 어디 있을까?

아들은 항상 자기 아내를 “Best wife in the world”라고 부르고 있다. 그들의 관계는 날마다 더욱 긴밀해지고 주 안에서 한 쌍의 원앙이 되었다. 나는 젊을 때 홀로 되었으므로 아들과 며느리가 해로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것이 나의 못다 이룬 소원을 이루는 일이었기에 주야로 그것을 위하여 기도 하였다. 그 소원을 주께서 이루어 주셨다.

막내 손자 Andy가 우리 집에 들어와서 약 1 년 가량 지났다. 그 동안 비좁아서 나의 바느질감과 솜을 딸네집에 갖다 맡겼었다. 딸네집도 식구가 많아져 내 짐을 찾아 와야 했다. Andy가 이사를 나간 이튿날 미리 기별한 후 아들과 함께 짐을 찾으러 갔더니 딸과 사위가 반갑게 맞아주며 도와 주었다.

딸과 사위도 갈수록 어울리는 한 쌍의 원앙이 되었다. 20 대에는 딸이 “Abe의 아빠인 그를 사랑하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했다지만 이제는 그의 실수까지 사랑스럽게 보여 시종 명랑한 목소리로 웃음을 연발하니 사위는 신이 나서 언제나 당당하다. 이제 교회에서 2008년도에 수석장로로서 헌신하고 두 사람이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다. 사위는 자기 아내를 세상에서 제일 가는 여성으로 생각하고 기뻐하고 있으니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 감사하다.

딸이 시집 갈 때 나는 바쁜 생활 중에도 여러 달 걸려서 내 손으로 수 놓은 병풍을 선물로 주었다.그리고 그것보다 가장 소중한 선물을 주었는데 성경말씀을 녹음하여 주며 시댁에 가서 시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 것을 교훈하였다.

성경 말씀 잠언 31 장 10절에서 31 절까지 녹음해서 주었고 시댁에 가서 효도하고 우애하고 남편에게 잘 하는 것이 곧 엄마에게 효도하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딸이 여러 해 후에 말하기를 자기는 시집 가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엄마의 교훈 대로 살았으므로 시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형제들의 사랑도 받고 남편의 사랑도 받고 세 아들도 엄마를 존경하고 사랑하며 세 자부가 다 딸같이 시어머니를 따르고 존경하니 딸은 행복하게 회갑을 맞이하게 되었다.

소원이던 막내 아들 Ben도 11 월 2 일에 결혼 했으니 또 세 쌍의 젊은 원앙을 본다.

아들네 집에는 George와 Susan 그리고 Andy, 2 남 1 녀를 주셨다. George는 세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Susan이 딸 둘, Andy는 딸 하나 아들 하나, 아들의 자손이 현재 다섯 명이다. George와 Martha, Susan과 Jason, 그리고 Andy와 Emily 이 세 쌍의 원앙도 자기들의 부모 못지 않게 다정한 커풀들이다.

딸네 집에는 Abe는 아들 하나,딸 하나, 둘이고, Alex는 아들 둘, 딸 하나,벤은 아들 하나, 총 여섯 명의 자손이 있다. 13 명의 증손을 주신 하나님게 감사드린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찬양하리라.

이 자손들이 다 교회에 신실히 출석하고 가정예배도 잘 드리고 자기의 자녀들과 더불어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고 있으니 나는 참 기쁘다.

내가 나의 자녀들과 손자녀들에게 바랐던 것은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신실히 하나님을 믿으며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나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 주셨고 그들이 다 주 안에서 살고 있으니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할렐루야!

계 1:4-6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봅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독자 여러분들의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 창조주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은혜와 치유와 구원과 축복이 충만히 임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작성자 : 정무흠        2018-08-12 08:26
등록된 답글이 없습니다.
Load
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제휴 및 문의 |  웹사이트 배너
Copyright © 2024 8healthplans.com. New York, US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