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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흠 - mooh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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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광의 빛 속으로 제 4부 새출발! 인생역전! - 박옥종 집사님 자서전
그 영광의 빛 속으로 제 4부 새출발! 인생역전!  - 박옥종 집사님 자서전

1 장

1. 새 출발

1963 년 7 월 6 일 경산 욱수동 호수에서 침례를 받았다. 어머니와 딸과 3 사람, 곧 3대(代)가 함께 침례를 받는 경사에 동생 내외가 대구에서 나와 축하해 주고 사진도 찍어 주었다.

그날 이후 내겐 번민이 생겼다.

‘이제까지는 교회가 어떤 곳인지 관람하는 사람처럼 혹은 진단하는 사람처럼 다녔었다. 그러나 명실 공히 하나님의 딸로 입적(入籍)된 자로 오늘부터 살아야 되지 않을까?’

문제가 있었다. 나는 1할 5부 빚을 얻어 장사하는 도붓장수였다. 아주 먼 길은 기차를 타든지 버스를 타든지 했지만 버스도 안 다니는 시골로 주로 다녀야 했기에 머리에 이고 다니는 보따리장수일 수밖에 없었으나 이자가 너무 고리(高利)인데다가 물건을 떼어올 땐 외상값을 달 수 밖에 없는 적은 자본이었고 그래서 이자 갚을 걱정, 외상값 걱정, 수금 걱정 등으로 또 아이들 학비 걱정 하며 내 머리는 쉴 틈이 없었고 밤에는 아이들 공부를 어떻게 시킬까 궁리하느라 하룻밤에 기와집 열두 채도 더 짓는 상상의 날개를 펼치기도 하느라 항상 잠도 모자랐다. 천을 팔면 바느질 부탁하는 사람도 있어 집에 돌아오면 바느질 하느라 쉬는 날도 없었다. 오직 일념(一念) 자녀에 대한 집념이 나의 가냘픈 몸을 지탱(支撐)케 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겠다고 서약하고 보니 성경 읽을 시간도 낼 수 없고 주야로 돈 걱정에 사로잡혀 있으니 이렇게 믿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이제는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었다. 내가 보기에 진정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분이라고 생각되는 서너 분을 찾아가 의논 드렸는데 그분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고리 격이었다. 나는 여러 날 홀로 생각했다.

‘너무 여러 가지 종류의 천을 가지고 다니니 자금이 많이 들지. 이제 한 종류씩 곧 뽀뿌링이면 색깔과 무늬가 다른 몇 가지를 가져오고, 그 다음엔 다른 종류로 역시 색상이나 무늬가 다른 것 등등,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다.’

혼자 생각해 낸 이것은 이 난관을 돌파하는데 명답을 찾은 거라고 생각되었다.

길을 떠났다. 차를 타고 진해로 ---동생은 출동 중, 어머니는 대구 오빠 집으로,
어머니 방에서 내일의 수금을 위하여 잠을 잤다. 밤부터 비 오는 소리가 양철지붕을 통해 들려왔다.하루, 이틀, 사흘, 나흘. 자그마치 1 주일간을 비는 계속되었다. 장마철이었던 것이다. 보따리 장사는 천보따리를 이고 수금을 나가야 되는데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다. 나 스스로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는 이상---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방법으로 나의 발을 묶으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무 사람에게서도 얻지 못하였던 해결점을 당신의 방법으로 얻게 하셨던 것이다. 기도를 어떤 방법으로 하여야 되는지도 모르고 기도하기보다는 목사님이나 선배되는 신실한 교인에게 문의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줄만 알던 나에게 하나님과 씨름하는 기도의 기간이 시작되었다. 만 1 주일간을 참으로 야곱이 얍복강 나루에서 씨름하던 것 같은 기도를 하게 되었다. 나의 기도 제목은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세요.” 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물 가운데라도 불 가운데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들어가리라 하는 열렬한 믿음의 탄원이었다. 내게 최선의 길을 선택하게 하시고 최선의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었기에 나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잠든 시간 이외에는 오직 한가지 소원, 한 마음으로 주께 순종하기를 바라며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고 결심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간구하였다.

마침내 응답이 왔다. 7 월 17 일 오전 1 시 반, (바로 2 시간 전, 16 일 자정(子正)이 지나고1시간 반 후) 16 일 밤 11 시 반 경 나는 잠자리에 들었었다. 깊이 잠들었었는데 갑자기 뜨거운 불이 화끈 임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이 임하였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그 말씀을 받고 어둠 속에 그 말씀을 되풀이 상기할 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성경을 거의 읽을 겨를도 없이 살아온 지난 날, 이제 겨우 달고 오묘한 진리를 알고자 원하게 된 나에겐 그 구절을 알되 어디에 있는지 누구에게 하신 말씀인지 알길이 없었거늘 그리고 나의 두뇌는 갈고 닦지 않아 무디어 있는 상태라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것도 깨달을 수 없는 상태였다.

분명한 주님의 계시!

‘그러나 우매(愚昧)한 영혼은 실행의 방법을 명확히 알지 못하여 애쓰게 되니 주여, 다시 가르쳐 주옵소서’

미약한 이 영혼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든 것이 잠든 한밤중
가르침 주신 것 감사합니다.

주의 성령으로 이끌어 주소서
이 몸 힘 약하오니
주님 같이 하옵소서

다시 깊이 잠들었던 나는 화끈 뜨거운 불이 머리에 임함을 느꼈다. 시계는 2시 10 분경이었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나는 번민하였다. ‘어떻게 하라 하시는 말씀인지?‘

다시 주께서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6 장을 보라.”

나는 일어났다. 마태복음 6 장을 처음부터 읽어나갔다. 24 절에 와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경(輕)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5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절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절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28절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29절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 하였느니라”

30절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31절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절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절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실행의 방법을 명시(明示)하신 이 계시,
나는 감사의 눈물에 젖으며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님, 이제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깁니다. 뜻대로 하옵소서. 아이들의 공부도 주님께 맡깁니다. 저의 자녀들이 학업을 마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길이라면 끝까지 이루어 주시고 그렇지 아니하오면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주소서. 오직 주님의 뜻대로 하시고 영광 받으소서.

주여 담대한 믿음 주옵소서.
해방을 손수 보살피소서.“

하고 기도드리며 굵은 눈물방울이 나의 치마폭에 뚝뚝 떨어지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게 보이는 것 같다.

그날 이후 나는 비로소 평강을 맛보았다. 나를 조여 매던 올가미에서 완전히 해방된 느낌이었다. 나는 자유인이 되었다. 주님의 은혜로 진리로 자유를 얻은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평안 속에 기쁨과 감사가 가슴속에 잔잔한 호수를 이루었다.
나는 새 사람으로 새 출발을 한 것이었다. 할렐루야!


2. 기도의 열매

1963 년 여름에 들어설 즈음에 기숙사에 있는 딸을 만나러 갔다. 역전에서 버스를 내려 한참 걸어가다가 철둑을 지나 좁은 골목길을 한참 걸어가면 귀주가 다니는 학교가 나타난다. 대구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시골의 작은 고등학교에 오기 위해 금식하고 기도하고 눈물로 호소하면서 소원성취한 딸의 신앙은 그 당시의 나에겐 놀라울 뿐이었다. 아직도 재학중이던 중학교에서 교장실에까지 불려가서 그토록 간곡한 권면을 받고서도 흔들리지 않던 신앙, 계속 대학교에까지 장학생으로 공부시켜 모교의 교사로 채용하겠다는 모든 제안도 순진한 그 믿음을 꺾을 수는 없었다.

“네가 이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고 공부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 은혜를 그렇게 저버릴 수 있겠느냐?”는 선생님들의 충고도 어린 소녀의 진리에 대한 갈망을 무산(霧散)시킬 수는 없었다. 어머니와 오빠의 반대에도 금식하며 기도하며 눈물어린 음성으로 온유하고 겸손하게 조용히 자신의 소신을 피력(披瀝)하여 결국 귀주는 승리하였던 것이다 드디어 초봄에 귀주는 이 학교에 입학하였고 귀주의 생애는 하나님의 딸로서의 생애로 변화되어가고 있음을 나는 볼 수 있었다.

비록 나의 딸이지만 나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공손하고 신중하고 친절하며 온유하고 겸손한 딸의 거동에서 나는 차츰 딸이 올바른 선택을 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귀주를 만난 후 떠나려고 할 때 귀주가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엄마, 엄마도 하나님 믿으세요.”

“엄마도 하나님 믿고 있지 않느냐.”

참으로 나도 하나님을 믿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고 있었다. 나는 죽음에 직면했을 때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가정과 건강”이란 책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확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교회에 나오셔야 잘 믿으실 수 있지요. 엄마도 교회에 나오세요.”
귀주는 간절한 음성으로 말하였다.

나는 무교회 주의로 흐르고 있었다. 아무에게서도 그런 사상을 전수 받은 적은 없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한 번은 내가 진해에서 겪은 일인데 지금 그 경위를 여기서 이야기 해 보련다.

1961 년 12 월 3 일 맑음 석양녘 구름 몇 방울 비 오락가락

종일 글을 쓰노라 지쳤다. 저녁 먹고 또 펼치니 머리가 휭!하고 눈이 따갑다. 눈 때문에 마음대로 글을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데 여간 애달픈 일이 아니다. 부득이 일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게 된다. 글을 읽다가도 눈이 침침하고 따갑고 어른어른 춤을 추어데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쟈켓을 걸치고 밖으로 나간다. 어머니께서 밤에 어디로 가느냐고 걱정을 하신다. 어둠이 짙어오는 길을 陸大 앞으로 설설 나가려니 세 청년이 내 앞으로 걸어간다. 무엇인가 이야기하며 각기 손에 성경과 찬송가를 들고 가고 있다. 불현듯 이사람들을 따라가 보리라는 마음이 솟아오른다. 교회에 가서 모처럼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 보는 것도 해롭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건 무슨 교회야?”
앞에 가던 한 청년의 물음에
“성결교회야.” 다른 청년의 답이다.

청년들은 자꾸만 가고 있다. 어디 근방인 줄만 알았더니 꽤 먼 모양이다. 이젠 애초의 한 30 분만 산보하겠다는 생각과는 달리 일종의 스릴조차 느끼며 나는 따라간다.

나의 마음은 점점 기어코 교회에 가보고 싶다는 욕망으로 변한다. 그러나 진해극장 앞을 지나 밤길이라 어딘지도 모르게 자꾸만 멀리 따라왔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청년들은 엉뚱하게도 교회와는 동떨어지게 인연이 먼 집으로 쑥 들어가버린다.

‘행여나 2 층이 교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불빛 가까이에 다가서서 쳐다보았으나 아무리 보아야 이층도 장사 집인가 싶다. 청년들이 사라진 입구엔 대중식사라고 씌어있는 천쪽이 너풀거리고 있다.

‘하하’

그제야 납득을 하고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잔뜩 긴장해 있던 신경이 탁 풀리며 허전해진다. 사방을 둘러보았다. 좀 더 앞으로 나가보니 역전이다. K읍에서 올 때 내렸던 역전이 밤눈에도 낯익다.

‘교회가 아마 이 근방에 있기에 저 청년들이 여기서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찾아보아도 뾰족탑에 십자가는 보이지 않는다. 종각이 보이지 않으면 교회는?

그냥 되돌아서려고 해도 억을하다.

남쪽 길로 접어들었다. 가다가 교회가 보이면 들어가 볼 것이요. 안 보이면 애초의 목적대로 산보가 되는 것이라고 어둠침침한 넓은 거리를 혼자 걷자니 좀 쓸쓸하다. 낯선 거리, 낮에도 집에 박혀 있기가 일상생활인 내가 …?

그러나 한참 내려가니 교회의 종각이 보인다. 동쪽 길로 종각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니 불빛이 어둑한 마당에 아이들이 십여명 뛰놀고 있다. 창고와도 비슷한 우중충한 건물…

아이들에게 물으니 진해교회라 한다. 어디로 들어가느냐고 물으니 입구쪽과 안쪽 두 곳을 가리키며 여기서도, 저기서도, 두 곳에서 예배를 본다 한다. 그 말이 이상해 안으로 들어가보니 거기서도 아이들이 떠들고 있는데 중년 여인이 한 사람 주의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 여인에게 물어서 겨우 교회의 내막을 알았다. 바깥쪽은 NA요. 안쪽은 WCC라는 것이다. 양 파의 싸움 때문에 복판의 우중충한 건물은 할일 없이 서 있는 모양이다. 교회를 복판에 두고 제각기 새로 아무렇게나 급조한 건물에서 예배 드리고 있는 모양이다.

참 딱한 신앙계다. 어찌하여 다 같이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싸우는지? 내가 옳다고 서로 주장하는 사이에 교회의 건물은 썩어가고 있는 것이다.

함대(艦隊)목사라는 분이 설교하였다. “신앙생활의 실제성”이라는 강목으로 . 현대신앙은 도피적인 독선적인 신앙이어서는 안되며 용감히 대중 속에 들어가 소금과 빛의 직분을 다하여야 한다는…



나는 진해에서 교회를 찾아갔던 날 밤의 경험을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렇개 예배를 드리면서 어떻게 마음이 편안할 수가 있겠는가? 얼마나 많은 교파들이 자기가 옳다고 부르짖고 있는지 나는 차라리 함석헌 선생님의 무교회주의가 좋은 것 같아 아예 아무 교회에도 나가지 않기로 했다.



“그렇지만 교회에 나오셔야 잘 믿을 수 있지요. 엄마도 교회에 나오세요.”

딸과 작별하고 나는 나의 생활로 돌아와 다시 보따리 장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는 버스도 많지 않고 시골 구석까지 가는 차도 없어서 걸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딸과 만나고 돌아온 후 보따리를 이고 무인 지경(밭이나 논만이 펼쳐저 있는 곳이나 강가 오솔갈)을 걸어가노라면 딸이 하던 말이 귀에 들리는 듯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엄마, 엄마도 교회에 나오세요.”

“그렇지만 교회에 나오셔야 잘 믿으실 수가 있지요. 엄마도 교회에 나오세요.”

“엄마와 오빠를 위해 다른 애들보다 30 분 더 일찍 일어나서 기도실에 가서 기도하고 있어요.” 하던…



나는 아이들과 살 때 엄한 교육을 시키는 엄마였다. 그래서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야 했다. 나는 언제나 3 시 반이면 일어났고 아들도 나하고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Jogging을하고 공부하고 물 길어오고 하였다. 딸은 세 사람 중에 제일 늦게 일어나는 사람이었다. 아침에는 깨우지 않으면 잠을 더 자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잠꾸러기가 어떻게 다른 아이들 보다 30 분이나 더 일찍 일어나서 30 분 동안이나 기도를 하는지…?

내 마음에 받은 감동은 갈수록 더 큰 종소리로 마음을 울리는 것을 느꼈다. 특히 교회에 가야 하는 날 보따리를 이고 아무도 없는 논밭 사이 길로 걸을 때면 그 소리가 더 커지는 것이었다.







3. 교사로 부르심을 받다



침례를 받은 후에 학교 교사로 부임했다. 교장까지 합해서 전교직원(全敎職員)이 다섯명인 작은 사립 학교였다. 야간에 중학교도 있는 학교여서 낮에는 초등학교에서, 밤에는 중학교에서 가르쳐야만 하였다. 일이내겐 과중하였다.

6. 25 동란 직후라 부모 잃은 불쌍한 아이들, 집이 가난한 아이들, 공부를 위하여 집을 떠나온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먹여 주고, 잠 재워 주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아이들이 집을 떠나 이 학교로 왔다. 아직 시설은 미비한데 아이들은 한꺼번에 많이 밀어닥쳤기 때문에 정말 모든 곳에 손이 모자라고무척 일이 많고 복잡하고 힘드는상황이었다.

글만 가르치면 되는 교사가 아니었다. 그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펴야 하였다. 신발을 벗어 시장 안에 넣고교실에 들어와야 했는데 시시때때로 “선생님, 내 신 없어졌어요.” 하며 우는 어린이들의 눈물 어린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두꺼비 등 같이 손이 튼 어린이의 손을 따뜻한 물에 담궈 씻어 주고 바세린을 발라 주어야했으며 코를 훌쩍거리는 어린이의 감당 못하는 콧물을 닦아 주어야 하였다.



계모 슬하에 있다가 그 아버지가 이곳에 보낸 어린 남매가 있었다. 아직 학교에 들어오지 못할 연령의 동생을 자기 옆에 앉히고 공부시간 내내 엄마같이 보살펴야 했던 소녀의 그 가냘픈 몸매와 슬프디 슬픈 순진한 눈빛을 보며 아프던 내 마음을 달래며 어떻게 도와 주어야 할지 안타깝던 일---



충청도의 같은 마을에서 온 3 명의 중학생이 있었다. 남학생이 하나, 여학생이 둘이었다. 여학생 하나가 병이 났다. 많이 아프기 때문에 두 친구의 부축을 받아 병원에 데리고 갔다. 경남여고 정문 앞에 있는 자혜병원에 갔다. 인자한 크리스챤인 그 원장은 무료로 진찰도 해 주고 약도 주었다. 그는 성결교인이었다. 나는그 학생을 위하여 죽도 끓여다 주고 병원에 데려가고 하는 동안에 몸에 무리가 갔는지 내가 병이 났다.



학교는 높은 산 위에 있었고 병원은 까마득한 저 아래였다. 그리고 내가 세 들어 있는 집은 그 중간보다 좀아래였는지라 하루에 몇 번 오르내리다가 보면 그것 만으로도 완전히 지쳐버리는 것이었다. 내 건강으로는자혜병원에 한 번 가는 것 만으로도 완전히 지치고 학교로 올라갈 때면 숨이 차서 올라가기 힘든 가파른 길이였기 때문에 며칠 계속하다 보니 나도 병원 신세를 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자혜병원에 찾아갔더니 신장염이라는 진단이 내렸다. 전신이 부어 숨이 차 호흡하기가 곤란했다. 원장님은 나에게 팥죽을 끓여서 (간이없이) 먹되 정 먹기가 힘들면 소금 바르지 않은 김을 조금 먹으라는 처방을 내렸다.



주인 집은 바깥 주인이 경찰관이었는데 아직 아기가 하나인 젊은 부부였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집에서 된장찌게나 국 냄새가 풍겨오면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혼자서 예배드리며“내 영혼이 주 은혜로 ---" 하고 찬미할 때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 슬퍼서 흐르는 눈물이 아니라 비록 내가 가난하고 외롭고 병들었지만 주님이 계시다는 그 한 가지 만으로 감격하여

“내 비록 산과 들이나 혹 초막 속에 거해도

내 주를 모신 곳이면 그곳이 천국 되도다

오 할렐루야 나의 주 내 지은 죄를 사하고

또 나와 함께 계시니 기쁨의 천국 되도다”

1절, 2 절, 3 절을 부르는 동안 감사의 눈물이 줄줄 흘러서 내 뺨을 적시며 흘러내렸다.



그 상태로 근무하기가 너무 힘들어 시골집에 돌아왔다. 시어머님께서 이팥죽이 좋다고 하시며 토종뽕나무를 구해다가 삶은 물에 이팥죽을 끓여 주셨다. 집에서 휴양하는 동안 나아서 학교로 돌아와 다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낮에는 초등학교에서 가르치고, 밤에는 중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안 병이 재발했다.

이제 큰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미국인 원장이“당신은 이제 이 병이 종신병(終身病)입니다. 신장염은 재발(再發)하면 불치(不治)입니다.” 했다.

자혜병원 원장도 “자녀들을 생각하시거든 이제 학교를 그만 두십시오. 이 상태로 나가면 생명이 위험합니다." 했다.



이제는 떠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진해로 향하여 가는 버스 안에서 내 마음은 울고 있었다. 신발이 없어졌다고 울던 어린이들의 얼굴, 매일 동생 때문에 울먹이던 순이의 얼굴, 어린이들 하나 하나의 얼굴은 그리움의 밀물이 되어 가슴에 파도쳤다.

‘신주머니를 만들어서 보내 주어야지.’

마음에 다짐하며 병든 몸을 치료 받기 위하여 어머니가 계시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어머니의 지극한 간호와 동생의 보살핌 속에서 나는 회복되어갔다. 동생은 그 당시 해군 군함의 부함장이었고 어머니는 아직 총각인 동생을 위하여 진해에 계셨다. 어느 날 불고기 냄새가 풍겨 왔다.어머니가 동생을 위하여 소고기 불고기를 굽고 계셨던 것이다. 식사 시간에 나의 눈 앞에 차려 놓아진 불고기, 그 당시에 교회엔 나갔지만 건강기별이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의 주치의(主治醫)였던 자혜병원 원장이 써준 좌우명이 생각났다. 그것은 첫째로“동물성 기름은 한 방울도 먹지 말 것”이었다.

내 뇌리(腦裡)에 그 글자들이 크게 확대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묵도(默禱)하였다. 그 순간 신기하게도 불고기를 먹고 싶다는 생각은 사라졌다.



나는 지금도 은인인 그 당시의 나의 주치의였던 자혜병원 원장님을 잊을 수 없다. 그분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좌우명이라고 기록하여 내가 평생 지켜야 할 사항들을 써 주었다.

첫째가 동물성 기름을 먹지 말 것이었고, 짠 것, 자극성 있는 것, 과로(육체적 , 정신적)를 금하고 몸과 마음을 평안히 유지하고 살아야 하며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일일이 조목 조목 번호를 매겨서 써 놓았었다.

바쁜 분이 여사무원에게 타자로 치도록 말씀하셔도 되었을텐데 손수 정성껏 쓰셨다는 것도 내게는 감동을 주는 일이었고 서두에 좌우명이라고 크에 써늫은 것도 내 주의를 촉구하기 위한 예수님 같은 사랑의 배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분은 참으로 예수님의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 의사였다. 나는 나의 심비(心碑)에 그 좌우명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다. 바로 그것은 나를 죽음에서 살리기 위한 만병의 의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별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 내 나이 만 40 세 이었는데 곧 죽는다던 목숨이 배(倍)도 더 살았다.



어느 날, 진해교회 목사님 어머님께서 방문을 오셨다.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옵니다.

자유와 기쁨 베푸시는 주께로 옵니다。

병든 내 몸이 튼튼하고 빈궁한 살림 부해지며 죄악을 벗어 버리려고 주께로 옵니다

2 절, 3 절, 4 절,계속해서 이 찬미를 부르는 동안 나는 감격하고 감동 받고 울면서 자신을 주께 드렸다.

원하던 신주머니 보내는 일은 진해교회 교우들이 만들어서 어린이들에게 보내었다.







4. 극한상황



진해를 떠나올 때 동생이 당분간 내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생활비로 쓰라고 얼마간의 돈을 주었었다. 그러나 돌아와 보니 그렇게 되지 않았다. 우리가 대구 수성동에서 살던 시절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보증인이 되어버렸었다.

벌써 4, 5 년의 세월이 흘러간 옛 이야기다. 그러나 그 일 때문에 우리는 아지도 고초(苦楚)를 겪고 있는 것이다. 동생이 누나를 위하여 준 돈은 그돈을 갚느라고 흔적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다음 달에 갚겠다던 돈은 날자가 되었으나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빚진 사람이 되었다. 다달이 그 이자를 갚아야만 했다. 채주가 원금을 달란다는 연락이 방아주머니를 통해 내게로 왔다.

내가 남산동에 살던 시절, 나는 몸이 약해져서 일도 못하고 극심한 가난 속에 살고 있었다. 남산동에서 과히 멀지 않은 곳에서 성아주머니의 딸이 살고 있었다. 물론성아주머니도 같이살고 계셨다.아주머니의 딸 소희 아가씨의 말이 아무 날은 꼭 갚아주겠다 함으로 힘들지만 찾아갔다. 오래도록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고교생이던 아들이 숨이 턱에 닿아가지고 달려왔다.

“아무리 기다려도 어머니께서 안 오셔서 집에 돌아오시다가 길에 쓸어지셨나 하고 걱정이 되서 달려왔지요.” 했다. 성아주머니께서

“너무 늦을 것 같으니 내일 새벽에 다시 오게나.” 하였다.

나는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아침 일찍 다시 갔더니 문방구점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밤 사이에 온 가족이 문방구점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아연실색(啞然失色) 할말을 잃었다.



방아주머니에게서 연락을 받고 할수없이 일본에 살다가 해방과 함께 고국에 돌아온 백아주머니한테서 돈을 빌려 그 돈을 갚았다. 그리고 다달이 백아주머니한테 이자를 물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내가 진해에서 돌아온 후 곧 백아주머니가 돈이 필요하다고 돌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동생이 준 돈은 몽땅 그 돈을 갚아야만 했다.

그러나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던가! 만약 동생이 준 돈이 없었다면 어떻게 할뻔 했던가? 동생의 의도意圖와는 다르게 그돈을 써서 동생에게는 미안했지만 백아주머니는 참으로 정직하고 순진한 분인데 만약 내가 그 아주머니가 나를 믿고 돈을 빌려 주셨는데 제 때에 갚지 못했다면 얼마나 아주머니를 실망시켜 드렸을까?

우리가 만일 그 돈을 동생의 본의 대로 생활비로 썼다면 우리는 그렇게 심각한 어려움은 당치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세 식구가 다 안경을 쓰는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이웃과 모든 사물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는 체험을 하였다.

사람은 고난을 통해 더욱 배운다는 것을 깨달았다.







5. 자녀들과 함께 한 투병 생활 속에서



겨울 방학이 되어 아들과 딸이 다 찾아왔다. 어느 날 저녁 때, 셋이서 같이 걸었다. 아이들은 마음에 가득한 얘기를 털어늫기 시작했다.

결론은 엄마와 같이 살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자리에 누워 있는 엄마라도 좋으니 같이 살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아들도 엄마하고 K읍내에 방을 얻어 자기는 가정교사를 하고 집안 살림에 보태겠다고 했다.

결국 아직도 회복되지 못한 몸으로 아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떠나야만 했다. 어머니는 교회에서 받은 밀가루와 밀싸라기까지 주시면서 마음 안 놓이는 상태의 딸을 보내야만 하였다. 동생은 우선 살으라고 얼마간의 돈을 주었다.



K읍, 대구행 버스 정류장이 과히 멀지 않은 곳, 또한 가르칠 아이들이 올 수 있는 장소, 이런 것을 염두(念頭)에 두고 방을 물색하던 중에 알맞은 방을 하나 발견했다. 그러나 아궁이는 바깥에 한참 돌아가야 하는 레이르식 아궁이었다. 방도 크고 깨끗한데 왜 안 나가고 있었는지 알만 하였다. 우리는 우리 가족이 생활하기가 불편한 것까지 고려할 형편이 못 되었다. 방이 넓고 깨끗하고 학생들을 받을만 하다는 것이 매력이었고 첫째 위치가 교통이 좋고 학교들이 가까와 학생들이 오기에 최적(最的)의 장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좋은 위치였다. 그래서 우리 세 가족은 의견이 일치하여 그 방을 얻기로 했다. 우리가 세(貰) 든 방 옆은 전에 주인댁에서 편물학원을 할 때 사용하던 건물이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궁이에서 음식을 요리하려면 그 건물까지 돌아서 레이르 아궁이까지 가야 했다. 우리가 그 방에 세 들었을 때, 동쪽 유리창문 밖에 나무 걸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요리를 하려면 창문을 타넘고 나가 의자를 밟은 후 땅으로 내려 서서 레에르 아궁이를 끄내어서 음식을 끓여야 했다.요리를 할만한 재료가 없어 겨우 밥이나 익혀 먹고 국수나 푹 삶아서 먹는 형편이니 큰 불편은 없던 것 같다. 굶주림과 추위라는 대적(大敵)들이 있었으니 비록 추위 속에서였을지라도 창문 타넘는 것 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 해 겨울은 무던히도 추웠다. 우리 방안에 온도계가 걸려 있었는데 영하 3 도였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난 낮에도 이불로 몸을 가리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추웠다. 그해 겨울, 우리는 쌀 한 톨 구경할 수가 없어 보리쌀을 곱삶아야 했다. 겨울의 곱삶이는 물이 걷히지 않아 물이 걷도는 것 같았다. 그나마 그것도 실컷 먹을 수 없었다. 식기 안에 쑥 들어가게 퍼야만 했다. 어느 추운 날에 아들은 이른 아침에 식기 안에 들어간 보리밥 한 그릇 먹고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어두워서 돌아왔다. 들어오자 하는 말이

“어머니, 뜨뜻한 국물 없습니까? 추워서---" 하는 것이었다.

진해를 떠나올 때 어머니께서 주셨던 밀가루는 두 아이의 교복 풀 먹이느라(그 당시는 학생들의 하복은 풀을 빳빳하게 먹여서 다려야만 했다.) 아껴 아껴 썼지만 싹싹 손바닥으로 쓸어보니 겨우 한 공기쯤 되었다. 파 한 줄기도 없어 간장만 넣고 밀 수제비를 끓였다. 엄마가 창문을 타넘어 가서 끓여온 뜨끈한 수제비 국물을 훓훌 먹고 있는 오빠를 바라보고 있던 귀주가

“오빠, 참 맛있겠다.” 하고 한 마디 하였다.

“그래, 먹고 싶어?”

오빠는 동생에게 자기가 먹던 것을 덜어 주었다.

간장만 넣어서 끓인 멀건 수제비국을 둘이서 나눠 먹는 것을 보며 눈물겨운 심정이었다.



나는 약을 안 먹으면 소변도 볼 수 없는 환자였다. 내가 생각하기를

‘내가 어느 때까지 약을 먹고 살아야 하나. 예수님은 모든 병을 고치실 수 있는 분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약을 버렸다. 그리고 무릎 꿇고 아뢰기를

“주님, 저의 병을 고쳐 주세요. 저는 계속 약을 사 먹을 수 없는 형편이고 또 저는 이 약으로 제 병이 고쳐지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 만이 이 일을 하실 수 있으십니다.” 하였다.



나는 건강에 대하여 아무런 대책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단 것을 좋아하고 내 입에 맞는 것만 좋아하는 편식하는 약한 체질의 사람이었고 건강기별도 들은 적이 없는지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처분만 기다렸다. 이제 약도 버렸으니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라 믿었다. 내가 한 일은 마태복음 6 장 33절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이 말씀은 내가 침례 받은 후 1 주간 동안 기도 드렸을 때 응답하신 주임의 말씀이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 :33)







6. 주님과 함께 한 기쁨



새벽 3 시 반에 기상하면 기도 드리고 성경 읽고 주님께 드리는 시를 쓰고 하루 일과를 계획하며 메모하고 일사불란의 자세로 기쁨과 감사로 충만하여 순종하며 살았다. 주님과 나 사이엔 아무 가로막는 것이 없는 듯 하였다. 비록 가난하여 벽에 얼음이 만져지는 영하 3 도의 방안에서 낮에도 이불을 뒤집어쓸 만큼 춥고 배고팠지만 나는 행복의 절정에 있었다. 과거 어느 때보다, 한 가정의 사랑 받는 아내요 온 동네 사람들이 부러워하던, 행복한 여인이라는 소리 듣던, 그 시절의 행복을 과연 이 행복과 비교할 수 있을까? 참으로 세상 사람은 알지 못할 무한한 행복이었다.



하루 하루, 그날, 그날 하루의 모든 짐을 다 주님께 맡긴 평안과 완전한 신뢰감에서 오는 평강은 이 세상의 행복이 아니었다. 하늘이 주는 평강 속에 나는 내 속에 계속 솟아나는 생수의 샘을 간직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주님은 어린 아기같이 주님만 신뢰하는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엄청 많은 호박을 보내셨다. 호박이 신장에 좋다는 것을 여러 해 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때까지는 그런 단순한 건강지식도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렇게도 무지한 사람이었던 내게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셨다면 40 대 초반에 이세상을 하직했을 것이다.



양식이 없는지라 국수 한 뭉치 사면 호박 썰어넣고 삶아서 국수는 아이들 건져주고 호박만 먹으니 겨울 내내 주께서 나를 치료하셨다(나는 호박이 좋은 줄도 모르고 먹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호박을 보내시고 나를 치료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 어느 날 장터에 나가니 팔촌 시누이가 나를 보고

“형님 얼굴이 빛이 나네요. 참 좋아지셨어요.” 하였다.

주님 안에 있는 마음의 평안과 호박만 먹는 치료법으로 나를 치료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는 기간이었다.







7. 가정에서 학생들을 가르침



아들은 자기 친구 이모님 집에 매일 가서 가르치고 나는 세 학생을 집에서 가르쳤다. 하나는 팔촌 시누이의 아들이었는데 공부도 잘 하고 똑똑한 어린이였고 또 하나는 그의 한 반 친구였다. 그리고 또 다른 한 학생은 중학교 1 학년생이었는데 말을 심히 더듬었다. 처음에 내가 그 학생을 맡기 전에 초등학교 선생님인 친척아저씨가 “그 아이는 모든 선생님이 다 두 손 들었는데 안 맡는 것이 좋을 겁니다.” 했다. 그러나 나는 맡았다.



내가 처음에 이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엔 한참도 앉아 있기가 힘든 환자였음으로 좀 가르친 후에 방금 배운 것을 외우게 했다. 그 동안에 나는 누워서 좀 쉬다가 학생들이 다 외웠다 하면 일어나서 묻고 또 가르치고 하는 이런 식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필촌 시누이가 나의 형편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자기와 친한 사람들의 자녀들을 중학생 하나, 자기 아들과 같은 반의 학생 하나를 보내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학부모들은 모든 사정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 대신 보수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성심을 다해 가르쳤고 나의 헨디켑은 주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카버(cover)되었다.



중학교 1 학년 덕수는 말을 더듬는 바람에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우리 말 책도 읽기가 어려우니 영어책은 더구나 더할 수밖에---

매일 수십 번 따라읽기를 하였다. 그리고 숙제를 내었다. 집에 가서 외워 오라고 했다. 하루,이틀, 사흘, 나흘, 여러 날이 흘러가도 아무 향상이 없고 변화가 없었다. 매일 숙제는 못 해왔다는 것이다.



드디어 어느 날, 나는 결단(決斷)을 내렸다. 시험을 치니 조금도 노력한 흔적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렇게 전혀 숙제 해올 마음이 없는 사람은 못 가르치겠다. 비록 네가 말은 더듬지만 그래도 성의만 있으면 네 힘 자라는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못 가르치겠으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고 내일 부터는 공부하러 안 오는 것이 좋겠다.” 했다.

덕수는 다음 차례인 초등학교 5 학년생인 상진이와 기수가 와서 공부하는 시간에도 가지 않고 내내 쭈그리고 앉아 울먹거리고 있었지만 나는 못 본체 했다.



그 이튿날, 그날은 초등학생들이 먼저 오는 날이었다. 두 어린이는 우리 방에 들어서자 마자 무슨 큰 토픽 뉴스인 것처럼 큰 소리로 보고했다.

“선생님, 선생님, 오늘 아까,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덕수를 만났어요. 영어책 외우느라고 정신 없었어요. 아무 것도 딴 건 보이지 않았나 뵈요. 우리도 못 보고 지나갔어요. 어제 집에 돌아가면서 화가 나서 선생님 욕하면서 개천에도 빠지고 하더니 단단히 결심했나 봐요.“

후에 들은 얘기지만 상진이엄마(팔촌시누이)가 무슨 일로 덕수네 집에 갔더니 덕수엄마가

“왜 그러는지 모르지만 우리 덕수가 오늘 공부하러 갔다 와서 이제 다시는 그 선생님한테 공부하러는 안 가겠다고 떼를 쓰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하기에

상진이 엄마가

“우리 형님이 이유 없이 꾸중을 하실 분이 아니예요. 아마 덕수가 숙제를 안 해 갔거나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요. “

그래서 덕수 부모님이 덕수더러

“만약 그 선생님에게 공부하러 안 가겠다면 이제 집을 나가서 네 혼자 살아 봐라. 엄마 아빠는 공부 안 하는 아이는 내 아들로 인정할 수 없다." 하고 단단히 말했다 한다.



하여튼 참으로 덕수의 생애에 일대변혁(一大變革)의 날이 왔다.

비록 더듬거리기는 했지만 덕수는 숙제를 다 해온 것이었다.

나는 얼마나 기쁜지 참으로 뛸듯이 기뻤다.

“봐라, 덕수야, 네가 해냈지! 너도 하니까 되지! 잘 했다. 네가 열심히 하면 너도 공부 잘하는 사람이 될거야!”

그날부터 덕수는 일취월장(日就月將) 괄목(刮目)할만한 발전을 거듭하였다. 마침내 학기말 통지표를 받았을 때 덕수는 자기 반에서 5 등, 영어는 1 등인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 과거에 초등학교 시절 모든 선생님들이 다 두 손 들고 맡으면 골치 아픈 학생으로 취급 받고, 중학교에도 엄마 아빠가 오직 하나 뿐인 자녀인 덕수를 보결로 간신히 들어가게 한 열등생이던 그가 이제 우등생이 된 것이다.이것은 누가 한 일인가?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이었다. 그를 위한 나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었다.



기수도 또한 그러하다. 기수는 오른 손으로는 글을 못 썼고 왼손으로 썼는데 끌씨를 썼다고 하기보다는 갈매기가 날아가는 것을 그리는 형상으로 왼손으로 힘없이 그리니 글씨가 될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오른손을 잡고 글씨 연습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가정 방문을 하여 부모님이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랬더니 그의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이

“안됩니다. 습관이 되어가지고 이제는 안됩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간곡히 말했다.

“반드시 됩니다. 저는 되리라고 믿습니다. 다만 부모님께서 협조해 주셔야 됩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기수가 왼손으로 연필을 잡고 있을 때마다 오른 손으로 잡으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였다.

그분들이 안 된다고 하는데도 워낙 내가 꼭 된다고 확신있게 말하니 그의 부모님은

“그러면 그렇게 해보지요.” 하고 나의 열성에 마지 못해 대답하는 식으로 말했다.

따라 읽기를 계속하였는데 “표어여요”하는 하는 말을 백 번 이상 되풀이하여야만 하였다. 두 달 동안은 내 마음에 깜깜한 어두움 속에 빛 한 점 비치지 않는 듯 느껴졌다. 그러다가 두 달이 차자 바늘귀 만한 구멍이 뚤린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리로 빛이 비추는 것을 느꼈는데 보라! 얼마나 하나님의 능력이 위대하신가! 눈부신 발전이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그 빛은 확대되어 갔다. 지혜의 빛은 드디어 그의 두뇌 속에 잠겼던 문을 열고 그의 능력을 이끌어 내셨다. 원래부터 공부를 잘하는 성진이보다 더 정확하게 글을 읽고 썼다. 참으로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린다.







8. 무지로 만들어졌던 보증인



” 너는 사람으로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라 만일 갚을 것이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 네가 어찌 그리하겠느냐” 잠22:26,27



또 잠언 20 장 16 절과 27 장 13 절에는 글자도 한 자 안 틀리게 꼭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된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의 보증이 된 자는 그 몸을 볼모 잡힐지니라. “(잠 20;16)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된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의 보증이 된 자는 그 몸을 볼모 잡힐지니라”(잠 27: 13)



그리고 또한 잠언 6 장 1~5절 까지엔

잠 6:1”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2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에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3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4 네 눈으로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로 감기게 하지 말고

5 노루가 사냥군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나는 어리석었던 내 과거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거나 옛날처럼 내 옷을 벗어주어 보증하지 않았다 해도 보증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에 내가 보증인이 되어버렸던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고 여러 해 동안 나와 나의 자녀들이 고난 속에 살아야 했고 나 홀로 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그러므로 나는 아들에게 아직 임종은 이르지 않았지만 내 정신이 맑은 때에 유언을 했다. “절대로 말로라도 보증를 서는 일은 하지 말라.”라고, 그리고 “혹 어려운 사람에게 동정하여 도와 주어야 할 때는 다시 돌려받으려는 마음으로가 아닌 베푸는 마음으로 주고 네가 하나님 앞에 항상 거리낌이 없는 밝고 맑은 마음으로 살아야 된다.” 고

사람은 거짓말을 안 하려고 하지만 돈이 거짓말을 하게 만든다.

내가 존경하였던 친척아주머니는 결코 신의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믿고 있었으며 그분이 북한에서 해방 후에 남하하셔서 우리 집 아랫채에 계시는 동안 친밀한 교제를 하였었다. 대구에서 사실 때도 그분이 사는 곳과 우리 거처가 꽤 멀었지만 여전히 그 친밀한 교제 관계가 지속되고 있었다.우리가 수성동에 있을 때 찾아 오셨을 때도 나는 너무 반가워서 나의 최선을 다하여서 대접하려고 애썼다.

그분의 외동딸이 결혼한 후에 부중 앞에 문방구점을 차렸을 당시 Y아주머니께서 찾아오셨다.

“신학기가 시작되는 때에 맞춰 물건을 구비하여 채워야 되는데 내달이면 돈을 찾을 데가 있어서 한 달 동안만 빌리면 좋겠는데 Aunt Joon에게 갔더니 정호댁(나의 시댁 친척들이 부르는 나의 다른 이름-곧 택호)하고 같이 오면 빌려 주겠다 하더라.”

나는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Y아주머니를 동정하여 그분을 따라갔다.



다음 달 J아주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J아주머니도 자기 돈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려 준 것이라고 말했다. J아주머니도 홀로 되신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분이었다. 이렇게 하여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보증을 선 사람으로서 빚에 시달려야 하는 볼모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려운 나의 생활 속에서 몇 해 동안에 걸쳐서 이자를 물고 본전까지 갚아야 되는 수난을 겪었다.



기독교인이 되어 성경을 읽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잠언에서 이 말씀을 발견하고

‘내가 진작 예수를 믿었더라면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으로 살지 않았을 것을 …’ 하고 후회하였다. 그 후로는 누가 가령 나의 친형제가 와서

“돈 얼마가 필요한데…” 하고 말을 끄내어도 전에는 딱한 사정만 들으면 ‘어떻게 도와 줄까?’ 하고 백방으로 머리를 굴리는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내 수중에 그만한 돈이 없으면

“지금 내 수중에 그만한 돈이 없어서 도와 줄 수가 없네.” 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결심하고 나니 마음에 조금도 거리낌 없이 거절할 것은 거절할 수 있는 절도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두 번이나 그런 보증을 서서 그것 때문에 고생 위에 고생을 더해야만 했다. 나는 내 자녀들 뿐만 아니라 인생의 경험이 일천(日淺)한 젊은 분들에게 이 권고를 드리고 싶다.

“잠언의 말씀을 기억하고 결코 남의 보증을 서지 마십시오”라고



그리고 하나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내 힘이 미치지 않는데도 억지로 남을 도우려 하다가는 잘못 되는 수가 많지만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져갔을 때는 더 풍성히 마음껏 도울수 있다는 것을…

나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한 모든 분을 위하여 기도드린다. 그리고 그분들이 그 문제가 해결되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볼 때 같이 기뻐하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시고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무진장한 보화를 가지신 분이시다.







2장





1. 꿈을 통하여 얻은 깨달음





1973년 5월 아들 가족이 미국으로 떠난 후 나는 3 개의 의미 심장한 (meaningful) 꿈을 꾸었다.

나는 아들이 떠난 5년 반 후에 미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한 해 하나씩 정초에 꿈을 꾸었다.



I



첫째 꿈은 2장에 표현된 것과 같이 타는 듯한 사막길을 가는 데서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이 떨어져 나가고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 허위허위 마지막 힘을 다하여 무거운 발을 떼놓고 그들의 흐린 시야에 선명한 초록빛이 나타났다.

생생한 초록빛 나무 아래 반석에서 솟아나는 물이 있었다. 거기 앉아 있는 분이 표주박에 그 생수를 가득 채워서 각자의 입에 대었다.

생수로 소생한 그들은 다시 길을 갔다. 황량한 광야의 길이 그들 앞에 펼쳐져 있었다. 험한 그 길을 걸어가는 동안 사단은 여러 번 그들을 막고 위협하였다. 소스라칠 만큼 무서운 그의 모습에 소름이 끼쳤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예수님을 부르려고 온 힘을 다하였으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주님을 생각하며 다시 온 힘을 다하였다. 그 때 모기 소리 같은 내 목소리가 나왔다. 모기소리 같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루는 소리에 나를 위협하던 사단은 즉각 사라졌다. 나는 전진하였다. 그러나 사단은 곧 나타나 나를 가로막고 무섭게 위협하는 것이었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고 이런 경험을 여러 차례 한 후에 나는 드디어 강가에 다다랐다.

이 강만 건너면 천국이라는 것을 내 마음에 예수님께서 알게 하셨다. 그 강은 대안이 아득하게 멀리 보이는 폭이 넓은 강이었다. 그곳에 배는 한 척도 없었다.

내 마음속에

‘배가 한 척도 없는데 어떻게 건너가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때

‘예수님을 바라보라. 그러면 갈릴리 바다를 걸었던 베드로처럼 너도 이 강을 건널 수 있다’ (마 14:27-29).

그래서 나는 곧 온 심령속에 클로즈업 된 예수님께 심혼을 집중시키고 그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아갔다. 참으로 이 세상의 어떤 스케이트 선수도 경험에 보지 못했을 초스피드의 속력으로 나는 대안에 가 있었다. 나는 어느덧 하늘 유리 바닷가에 서있었다.



기쁨이 넘치는 얼굴들이 거기 있었다.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들어보지 못할 아름다운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었다. 나도 기쁨이 넘쳐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나는 그 때 내게 집중되어 있는 한 시선을 느꼈다. 그리고 돌아보았다. 몽매에도 잊지 못하던 나의 남편이 거기 있었다. 그도 찬양하고 있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 뵌 후 그의 구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며 기다리던 그와 시선이 마주쳤던 그 순간 나는 꿈을 깼다. 나는 그 후로 그의 구원을 위하여 드리던 기도를 하지 않았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해 주셨다고 믿기 때문이다.



2



그 이듬해 정월에 나는 또 한 꿈을 얻었다.

소풍을 가는 나들이인 것 같았다. 중간형의 손가방을 들고 웅장한 큰 대문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길고 큰 방이었다. 옛날 어린 시절에 가본 절간의 main room 같아 보였다. 교회의 소풍 같이 생각되었는데 우리가 그 방에 여장을 풀고 나자 세상 음악(jazz) 가락의 음악이 들려왔다.

‘네가 여기 있을 곳이 못 된다.’ 하는 마음의 소리를 나는 들었다. 소리 나지 않게 살그머니 나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바깥으로 나오자 나는 깊은 계곡을 가로지른 다리를 보았다. 얼마 가지 않아서 사람이 통과하기에는 너무 좁은 석문(돌문)이 나타났다. 도저히 내가 통과하기에는 너무 좁은 그 돌문 앞에서 나는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았다. 그러나 나는 그 다음 순간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태복음 7장 7, 8절)

그리고 기도하였다.

놀라운 일이었다. 다음 순간 어떠한 장사도 깯뜨릴 수 없을 것 같은 그 돌벽이 쫙 열리면서 나는 걸어갔다. 다시 얼마를 가자 또 절벽 같은 돌문이 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이번에도 조금 전의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를 망각하고 또 망연자실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다시 하나님의 은혜는 기적을 배푸셨고 나는 그 절벽의 돌문을 통과하여 나아갔다. 이러기를 수 없이 되풀이한 후에 마침내 나는 대안에 다달았다. 그곳은 낙원이었다. 꿈에도 그리던 낙원이었다.

주님께서 그곳에 계셨다. 주님께서는 내가 지나온 그 다리 쪽을 가리키시며 나에게 위로의 말씀을 하셨다. 나는 한없는 기쁨 속에 주님 앞에 서 있었다.



3



아들이 떠난 후 삼년 째의 새해가 왔을 때 나는 또 하나의 꿈, 세 번째 꿈을 꾸었다. 우리는 하늘 나라 가는 순례 행렬에 가담하여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가다가 한 산 앞에 도달하였다. 그런데 그 산 밑에 동굴이 있었다. 그 동굴을 통과하여 앞으로 나아가야만 된다고 했다. 우리 대열 속에는 어린 아이들이 있었다. 동굴 속으로 들어갈 차례가 오자 어른들은 허리를 굽히지 못하여 여러 번 시도하여야만 하였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뻣뻣한 허리는 잘 굽혀지지가 않았다. 여러 번 실패한 후에 간신히 허리를 굽히고 동굴 입구를 통과하였다. 하늘로 통하는 그 동굴의 문은 그토록 낮아서 납작 업드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른들이 허리를 굽히기가 그토록 힘들어 애쓰며 시간이 지체되는 동안 아이들은 망설임 없이 금방 허리를 굽히고 잘들 들어갔다.



나는 이 세가지 꿈에서 교훈을 받았다.

첫 번 째 꿈에서: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켜야 한다.

두 번 째 꿈에서: 세상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세 번 째 꿈에서: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한다.







2.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유산





우리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이 되신 적은 한 번도 없으셨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께 “교육자”라는 칭호를 드리고 싶다.

자녀들에게 올바른 길을 가도록, 선을 추구하도록, 세상의 부귀영화보다 올바른 사람이 되도록 힘써 가르치신 분이었다.

“정직, 그리고 부지런히 공부할 것은, 우리 머리에 박히도록, 몸에 배도록 익혔었다. 오빠의 이야기에 의하면 어떤 할아버지가 닭을 한 마리 가져와서 놓고 가버렸는데 아버지가 퇴근 하신 후 “당장 갖다 주라.”는 분부에 날이 저물어오는데 그 집을 찾아 갖다 주어야 했다고 하였다. 한 번은 오빠가 길에서 무엇인가 주워왔는데 “당장 그 자리에 갖다 놓으라고 말씀하셔서 그 자리에 갖다놓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동정심이 많으셨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친척 청년이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에 와 있었다. 그 후에 그가 독립하여 결혼 후에 강원도 산판에 가고 가족들 그의 부인( 거의 만삭이 되었었다.)과 처가 식구들이 여름 동안 우리 집에 와 있었다.

아버지는 친척들이나 가난한 이웃들에게 각별한 애정과 관심으로 돌보는 분이었고, 어머니는 마음이 넉넉하여 푸짐하게 나누기를 좋아하시는 분이어서 내가 철들고부터는 우리가 용돈을 넉넉히 타 쓸 그런 환경이 아니었다. 우리는 부자는 아니었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자라도록 교육을 받았다고나 할까?

S읍에 살 당시엔 “영천댁”이라면 아버지 이름보다 이웃에게 알려졌고 우리가 그곳을 떠나올 때 많은 사람들이 역에 전송을 나와서 프렛홈에서 손수건을 적시며 이별을 못내 아쉬워하였다.



나의 아버지께서 자녀들에게 양심의 소리에 예민하도록 정직에 대해 강조하며 키우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축복이었다. 지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살아가면서 아버지의 교육 방침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교육 방침이었음을 깨닫는다. 비록 구주 예수와 십자가의 진리는 알지 못하셨지만 우리에게 천의天意에 순종하여 살 것을 우리 마음에 새겨주신 우리 부모님은 가장 좋은 유산을 자녀에게 물려주신 것이라 생각된다.







3. 눈물로 주의 발을 씻을 뿐이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을 수 있다.

나는 죽고 거기 주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셨다.

은혜로 새 생명 얻었으니 어찌 자아가 살 곳을 찾겠는가!

나는 죽었다. 이제는 새 생명 가운데 주께서 내 안에 살아 계시니 나의 생명 주의 것이요.

나는 영원히 주님의 소유로 인치신 바 된 자요, 영원히 주님께 소속되었다.



심령속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나는 믿음의 손으로 그분을 더 확실히 붙들리

그분의 보혈은 나를 씻으셨다.

그분은 나를 정켤케 하시기 위해 찔리시며 상하셨다.



못 박히신 손과 발에서 흐르던 선지피

가시관 쓰신 이마에서 흘러내리던 그 피

한 방울, 한 방울,

나를 위해 치루신 그 희생은

너무나 크고 너무나 값진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어찌 다 측량하리이까!



오오 주님, 감사와 찬양을 주께 돌릴뿐이옵니다

내게 무슨 의가 있사옵니까?



아무 것, 아무것도 주께 드릴만한 것이 없는

이 무가치한 인생을

주님 안 계시면 사람에게 밟힐 뿐일 이 인생을

고귀한 신분, 하나님의 딸로 불러 주셨사오니

다만 눈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릴 뿐이옵니다



오 주님, 막달라 마리아는 눈물로 주님의 귀하신 발 씻고

값진 옥합 깨뜨려 주께 부어 드렸사오나

그 엄청난 값으로 향유를 마련했던 마리아보다 더 가난한 소녀는

과부의 두 렙돈을 가졌을 뿐이옵니다

아무 것도 주께 드릴만한 것이 없는 소녀

지금 눈물로 주님의 못자국난 발을 씻을 뿐이옵니다



오오 주님, 죄 많은 이 영혼을 받으소서

이 영혼에게 안식을 주소서

끝없는 평안을 주소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소녀

눈물로 주의 발 씻을 뿐이옵니다







4. 축 수연



주의 은총 한 없어

기쁨의 회갑 맞게 하시니

주님을 찬양할지로다



영원한 길 걷게 하신 주여

더욱 신실하고 아름다운 앞 생애 열리게 하시고

더욱 영광스런 복음의 선포자 되게 하소서



언제나 겸손히

언제나 꾸준히

언제나 부지런히 기도하고 연구하며



사랑 가득히

향기 가득히

빛 환하게 주님을 증거하게 하시고



갈망하는 영혼들

주께로 이끌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자 되게 하시며



주 다시 오시는 날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는 칭찬 듣는 주의 종 되게 하옵소서



1994년 1월 9일

누나 씀





3장





1. Eden Valley 도착 (Sep. 29. 1988)





눈의 아픔이 심한 가운데 못 올줄 알았던 이곳에 오게 되었다. 주께서 지켜 주셨기 때문에 나는 드디어 이 곳에 오게 되었다. 이곳에서의 나의 앞날을 나는 모르나 주께서는 아신다.

나의 품성이 변화되어 주님을 잘 증거하는 여종 되기를 소원한다.



이제 소원하던 이곳에 왔으니 오직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 은혜 가운데 자라기를 소원할 뿐이다. 마음도 몸도 회복되어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여생을 주께 바치기 소원할 뿐이다.



오랫동안 그리던 오 집사님을 만나뵙게 되었다. 참으로 반가웠다.

주님, 모든것을 주님께 의탁하옵니다.

오직 주님 뜻대로 인도하옵소서.



Oct. 5. 1988



“주를 찬송함과 존중함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 (시 71:8)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가슴 가득 번져갈 때

나는 밀물처럼 밀려오는 화평을 누린다.



잔잔한 호수 위에 조용히 파문이 번져가듯

나의 마음속은 온화한 기쁨으로 채워진다.



아무도 내 마음속 들여다보진 못해도

내 얼굴은 장미꽃처럼 피어난다.



주님은 조용한 음성으로 내 마음에 속삭여 주신다.

내가 늘 너와 함께 하리라고



참 행복의 뜻이 무엇인가

이제야 절실히 깨닫네

그것은 바로 주님을 마음에 모신 경지



아아 나는 행복자로다

세상의 누가 이 행복을 빼앗을 것인가!

그 누구도 빼앗지 못하리!



주는 나의 반석이시며 나의 방패시라.





Oct. 6. 1988



주님, 나의 시선을 고정시켜 주십시오.

목말라 타는 마음을 주십시오.

주님의 형상이 나의 마음에 오롯이 떠오르기까지



주님을 위해 내 마음 깊숙한 곳에

당신의 거처를 마련하옵소서

그리고 언제나 주께서 그 방에 계시옵소서





Oct. 7. 1988



이 세상에서 살 때에

우리가 가져야 할 복을 말씀하신 주님,

참 행복이 무엇입니까?



오늘 나의 마음에 헛된 욕망이 있습니까?

오직 주님만이 마음의 보좌를 차지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참된 행복을 추구하게 해 주십시오.



안일과 탐욕을 멀리하게 해 주시고

방심과 나태를 경고해 주옵소서.

오직 조님의 마음을 품게 해 주옵소서.



주님 가신 그 길을 말 없이 겸손히 따라가도록 이끌어 주소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할 수 있는 입술을 주십시오.



오 사랑의 주님,

다함이 없는 샘물 같은 주님의 사랑이

생명수로 흘러 넘치는 그곳에 내가 있어

그 샘물을 갈한 이에게 퍼주는 일을 하게 해 주심시오.



오늘 이 날의 거듭남이

영원토록 지속되게 하시고

주의 오심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용기를 주는 빛의 전달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직도 흑암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바라볼 수 있도록 부르는 전령(messenger)의 사명을

다하게 해 주십시오.



연약한 영혼들에게

강건한 힘을 주시는 분을 제시하고

다시 일어나도록 격려하는 편지의 전달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언제나 빛난 미소와 쉬임없는 봉사로

있는 그곳에서 주님의 산 편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께서 원하시는 빛과 향기와 진실이 담긴

산 편지가 되게 하옵소서.





Oct. 10. 1988



“하늘나라”



내 육안이 지금 볼 순 없어도

내 마음눈은 분명히 보네

내가 사모하여 바라는 그곳



주께서 예비하신 그 집

주와 함께 거닐 생명수 강가

어머니와 함께 쉴 그 아름다운 동산



천사와 함께 거닐 금거리

벗들과 함께 부를 찬양

자녀들과 함께 탈 거문고



하늘은 참으로 아름답도다.





Oct. 19. 1988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을 장려하여 강하게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실지라.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 (시 138:3, 8)



다시 눈이 나빠졌나보다. 다시 안압이 오르는 것을 느낀다. 설사가 나고 두통이 오고 토할 것 같은 증세가 계속된다. 집에서 안압이 많이 오를 때와 똑같은 증세임을 알았다.

오 집사님과 오집사님 자부님(김 장로님 사모님)과 남 목사님 세분이 찬미부르고, 돌아가며 합심 기도하였다. 좀 완화되었다. 그러나 밤에도 잘 자지 못하고 기도하며 조금씩 잤다.





Oct. 20 THU. 1988



주님 은혜로 토하지 않고 밤을 넘겼다. 아침에는 한결 나아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주께서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다. 오 집사님과 산책하였다.



점심 후, Mrs. 박과 Mrs. 김을 따라 Social Security Office로 갔다. 두 군데로 갔는데 한 군데는 정부에서 하는 곳이라 했고, 또 한 군데는 주(콜로라도 주)에서 하는 것이라 했다. 두 군데 다 친절하였고 정부에서 한다는 곳은 두 세달 걸리지만 한 달 안에 되도록 힘써 주겠다 하였고, 또 한 군데에서는 오늘이나 내일 당장 입원하라고 했다.

나는 기뻐해야 될지 슬퍼해야 될지 착잡한 심정이 되었다. 주님 은혜로 당장 눈이 낫는다면 집에 돌아가서 아이들을 위하여 봉사하며 교회에서 헌신하고 싶은 마음과, 또한 여기서도 요양원에 노인들이 오면 할 일이 많을테니 여기서 입원하여 눈이 낫기를 기다려 봉사할 수 있는 길이 열릴지….하고..

그러나 주께서 이 눈을 고쳐주시지 않으면 나는 남의 도움을 받는 처지로 있어야 하니 슬프다. 나는 참으로 낫고 싶다.

Eden Valley로 오고 싶어 오랫동안 소원했지만 병자로 입원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내 자존심은 이제 밑바닥까지 떨어졌다. 구걸하는 걸인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어서 눈이 좋아졌으면……



Oct. 21. Friday. 1988



눈이 좋지 않아 말씀도 조금 밖에 볼 수 없었다. 어제 저녁은 Life Style Center에서 잤다. (오 집사님과 둘이서) 참 깨끗하고 좋은 방이었으나 밤중부터 추워져서 무릎과 다리가 시리고 따가웠다. 온도를 올리고 무릎에 hot pad를 얹고야 잤다.

새벽 6시 반쯤 오 집사님 딸네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에 교회에서 한국 어린이들이 현악기로 특창을 했다.



오늘 오 집사님께서 뜨거운 물, 찬물, 수건으로 찜질해 주셨고(1시간 동안), 또 밤에는 고구마를 갈아 붙여 주셨다. 오 집사님의 기도와 정성으로 눈이 나을 것을 믿는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6) 고 말씀하셨다.



잠이 아니온다. 오래 눈 감고 있었으나 영 잠이 아니와 고구마 붙인 것을 떼고 일어났다. 열 두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Oct. 22. Saturday. 1988



며칠 동안 눈이 좋지 않은 이유로였지만 성경과 시대의 소망을 읽지 못하였다. 새벽에 헌신하는 시간이 적었다. 2, 3일의 등한함이 나를 연약하게 만들었다. 힘이 없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무력한 내게 주님이 얼마나 소중한 분인가를 생각한다. 주님 없이 나는 존재할 수 없고 주님 없이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새삼 절실히 느낀다.



오 주님!

주님의 사랑이

주님의 자비가

무한하심을 새삼 느끼옵니다



소녀를 소성케 하소서

주님 발 앞에

이 몸 던지고

떨리는 마음으로 떨리는 입술로 아뢰옵니다



다시 일어나

살게 하소서

병든 이 몸

불쌍히 여기소서



바디메오를 눈 뜨게 하신 주님,

소녀의 눈도 밝혀 주옵소서



주님 아니시면 누가 이 눈을 치료하리까



세상의 의약이 헛되고

세상의 의술이 무력한 이 때

주여, 당신의 손으로 어루만지소서



나를 고치사 주님 쓰시기에

알맞은 도구가 되게 하소서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그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을 만진 것처럼

주님을 붙드옵니다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비록 연약한 죄인일지라도

누추한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능력의 손으로 안찰하옵소서

그 여인이 떨며 주님 발 앞에 무릎 꿇고

고백한 것처럼

소녀도 주님의 은혜를 고백하게 하옵소서



이 죄인을 고쳐주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

찬송과 기도를 쉬지 않게 하소서

기쁨과 감사가 늘 충만케 하소서





사랑하는 딸에게 Nov. 10, 1988



그 동안 주님 은혜 가운데 잘 있느냐?

오늘 김 장로님께서 그곳으로 떠나신다기에 몇 자 적는다.

옷들이 여기서는 별로 필요 없고 모사(털실)스웨터 같은 것은 세탁소도 멀고 해서 잘 입을 수가 없고 치마는 네가 준 골덴 치마 하나가 제일 적합한 옷인 것 같다. 매일 건강 위해 걸으니 긴 치마는 좀 불편하다.

필요 없는 옷들은 보내니 그리 알고 (여기는 바지를 안 입으니) 그리고 스웨터 혹 화학사로 짠 것(색깔로) 있으면 하나 보내 주면 좋겠다. 흰 스웨터만 입었는데 자주 빨려니 힘드는구나. 언니한테 내일이라도 학교 옷 얻는데서 얻을 수 있으면 하나 얻어 주었으면…네가 빨아서 보내 주면 좋겠는데…김 장로님이 월요일에 돌아오신다니까 언니에게나 네게 있으면 보내 주면 고맙겠다.



오집사님과 Oudery 언니와 김 장로님과 사모님이 나를 위해 베푼 사랑은 말로 다 할 수 없으니 그 은혜를 잊지 말기 바란다.



주님의 은혜 속에 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





2. 10. Jan. 1. 1989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2)



나의 생애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져온 사건, 눈에 상처를 입고, 반년 이상 투병 생활을 해오던1988년은 드디어 끝나고 이제 내 앞에 소망의 새해가 열렸다.

새해, 1989년도 첫 날, 이 새벽 나는 겸손히 머리 숙여 주님께 아뢴다.

주여, 당신의 섭리 가운데 경영하신대로 이루시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시옵기 빕니다.



주께서 최선을 아시오니

나를 최선의 길로 인도하소서



새해 벽두에

자신을 온전히 주께 바치기 원하오니



이 간절한 소원

주께서 아시고 받아 주소서



나는 나의 것 아니오니

주는 주의 것을 찾으소서 (나는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이제 내 안에

주께서 항상 살아 계시고

내가 주 안에

항상 살게 하소서



1989년!

주께서 오실 날 더욱 임박하오니

주여 깨게 합소서 머리를 들게 합소서



저 들리는 천사장의 소리

하나님의 나팔 소리

천지를 진동하는 그 소리 이제 들려오는 듯

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더러움도 악함도 거짓됨도 영약함도 다 멀리 가고

오직 순결해진 마음과 몸

주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감사와 감격으로

새 해 새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감동의 미묘한 선율 심금을 따라 울려 퍼집니다



주의 오실 날

사모하며 사모하며

주만 바라며 살리이다





Apr. 13. 1989



기쁨과 찬양과 감사의 메아리가 내 가슴을 울리니 나는 고동치는 가슴을 안고 일어났다.

‘주께서 오실 날이 하루 더 가까워졌다!’

이 생각은 심금(心琴)에 기쁨의 율동을 준다. 희열의 율동은 온 전신에 퍼지고 나는 외치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러나 나는 그 기쁨을 간직하고 조용한 감사의 제단을 주께 쌓으리



오늘, 집에 돌아갈 날도 하루 더 당겨졌다. 이제 닷새, 닷새만 있으면 집에 돌아가는 것이다. 본향이 가까와졌다는 개념과 상통하는 이 기쁨, 그립던 얼굴들을 대하리

집에 갈 날이 다가올수록 더 신속히 치유의 은사를 체험한다. 주께서 신속히 내 눈을 고치고 계신다.



새 날이 열렸네

감사와 기쁨과 찬양의 새 생애가 열렸네

샘물로 솟아나는 희열, 주는 내 안에 생명 샘 여셨네



호수위로 유유히 떠다니는 Canadian Geese,

그들이 일으키는 파문에서 봄을 본다

구름 없는 동녘 하늘-묏부리 사이가 아침빛으로 물들어가고 새들은 즐겁게 아침 찬양을 시작하고 오늘도 화창한 날 열리리라



아침 식사 후 걸을 때면 언제나 나뭇가지 상상 꼭대기에서 즐거운 노래를 아름답게 부르는 새, 어떤 때는 그 모습은 보이지 않고 노래하던 그 새 이름이 궁금하더니 오늘 Mrs. 리가 같이 걸으면서Marry가 가르쳐 주더라면서 그 새 이름이 meadow lark라 하였다. 봄을 알려주는 봄노래를 부르는 새라고 하였다.

종달새가 노래하는 고향 산천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오늘은 일이 많은 날이었다.

9시 45분의 (appointment 시간에 맞춰서)안과 의사를 찾아갔다. 안압이 19였다. 요전보다 내려온 셈이다. 참 감사하다. 오늘 한 사람의 젊은 의사가 배우기 위해 와 있었다. 참으로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나를 치료한 의사처럼 훌륭한 인격자도 드물 것 같다. 참으로 겸손하고 온유한 예수님을 닮은 분이시다.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하나 표현할 길 없어 한 마디 “Thank you so much!”라고만 하였다. 이제 오늘로서 이 office를 찾는 일도 끝인데…Mana (나의 안압을 재주고 의사를 도우던 여자분)도 나를 끌어안으며 작별을 아쉬워해 주었다. 다 고마운 분들이다.

Dr. Phelps가 주신 말 : 그동안 동정과 긍휼의 정신으로 환자를 돌보던 그분에게 주께서 끊임없는 축복을 내리시기를….

나는 내가 감동받고 읽었던 책, 시대의 소망을 사서 선물로 드려 나의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Dr.최 내외와 같이 에스텔 Park에 가보려 했으나 갑자기 Medicaid에서 전화가 와서 조사를 3시 반에 온다기에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오 집사님과 나는 자동적으로 못가고 나는 곧 양로원으로 돌아왔다.

양로원에 돌아와 눈에 안약을 넣고 좀 누웠으려니 미국 여자 두 분이 왔다. 그들이 조사할 일을 마치고 돌아가자, 고형진 씨가 왔다. 그는 본 이름은 스쿠시라고 한다. 외국인으로 어쩌면 그리도 힌국말이 유창한지-그가 한참 얘기하고 또 성경을 펴서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다. 살전 5:16-18의 말씀으로…

많은 감화를 받았다.

다음엔 Dr. 그로스퍼가 왔다. Dr.그로스퍼는 양로원 의사다. 내 혈압을 재고 심장의 고동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그런데 혈압이 110-80 이란다. 너무나 차이가 많아진 것 같다. 요전에는 80에 40, 80에 50이었던것 같은데 요즘 나의 혈압은 일정치가 않은것 같다. 그런데 가슴이 좀 답답한 것도 같다.



이제는 저녁 예배도 끝났고 하루의 일을 기록하며 늘 일이 없던 내 생애에 일이 많았던 한 날이었음을 깨닫는다.

오늘 Mrs. 리와 약속한 기도하러 가는 일을 이행치 못했다. 이제는 시간이 너무 늦은 것 같다. 그에게 전화로라도 사과해야겠다.



주님이여, 오늘의 소녀의 허물 사해 주시고

평안한 잠자리를 허락하소서

주님 품에 편히 쉬는 이 밤 되게 하옵소서



Mrs.리에게 전화로 사과하고 커텐을 닫으려다 바깥에 나가보았다. 아름다운 황혼의 정경은 아무리 봐도 싫증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아무도 나타낼 수 없는 동쪽과 동남쪽의 연분홍 색깔로 채색된 곳과 연한 푸르름과 흰 색과 은빛과 연회색, 동북쪽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서쪽 하늘은 참으로 마음속까지 밝아지고 맑아지게 하는 환하고 맑은 빛이다. 남에서 북으로 작은 두 마리 새가 작은 날개를 부지런히 움직이며 높이 날며 가고 둥우리 찾는 새들은 저녁을 알리고 있다. 저 두 마리 새는 쉴 곳 찾아 저리도 부지런히 가고 있으리.

아아 저 하늘! 어떤 이 세상 아름다운 옷감도 비교할 수 없도다. 참으로 주님의 솜씨는 위대하시다.





Apr. 14. 1989



작은 호수 위에 여명의 빛이 드리워져 잔잔히 잔물결치는 듯 멀리서도 보인다.



Meadow lark(쇠찌르레기속(屬)의 새)(미국산)는 높은 나무 꼭대기 아니면 전봇대 상상봉에 앉아 기가 막힌 아름다운 노래를 즐겁게 부르고 있다. 이쪽에서 부르면 저쪽에서 또 부르고 마치 서로 화답하는 것 같다.

아침 식사 후 걷노라면 어디서든지 그 노래가 들린다. 그 노래에서 포근한 평화를 느낀다. 넓은 목장에서 뛰노는 말이나 양떼를 눈에 그리기도 하며 평화로운 들판에서 노는 노루 사슴도 연상한다. 결국 나는 지금 하늘 나라, 회복된 에덴에서의 새들과 또 짐승들과 해함도 상함도 없는 그 복된 생활을 연상하게 된다.

마 24 : 42- 44 의 말씀에서 “예비하고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문득 주님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 느낀다.

곧 문 앞에 오실 주님, 시시각각으로 다가오시는 것을 느낀다.



오늘 Mrs.서와 Mrs.리를 위해 Mrs.서 방에서 기도했다. 오전과 오후에 두 번,

Mrs.서의 열이 오후에는 많이 내려 있었다.

“오 주님, 이 두 따님을 불쌍히 여기소서.

두 사람이 다 어려운 병이오니 주님, 사람의 능력으로 고칠 수 없는 병 주께서 고챠 주소서.





Apr. 18. 1989



날은 밝고 따뜻하며 바람은 시원하였다. 새들은 오늘도 즐겁게 노래하고 있었다.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이 생각은 기쁨으로 내 마음에 출렁였다.

점심식사 후 곧 떠나 박장로님 내외분의 도움을 입고 공항에서 정시에 비행기에 탔다. 그러나 비행기는 5 시가 넘어서야 출발했다. 클리브렌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우스벤드로 가는 비행기는 떠난 후였다.

생전 처음으로 호텔로 가서 혼자 자게 되었다. 나는 계속 주님께 기도드렸다. 그래서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느끼고 안심하였다.

19 일 아침 8 시에 라비(lobby)로 나가 공항 리무진을 타고 공항에 갔다. 얼마 동안 기다린 후 사우스벤드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드디어 그립고 그립던 나의 자녀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기쁜지 밤에 잠자리에 들어갈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Apr. 29 1989



요 1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오오 주님, 이 아침에

이러한 생수를 주시옵소서

갈한 목 갈한 마음 타는 듯 하오니



허락하신 생명수

배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되게 하소서



갈한 자여

다 주 앞에 나오라

이 생수를 받아 마셔라



사랑의 주님

네 속에 생수의 샘물

또한 솟아나게 하시리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두고 어디로 갔던가? 방황하는 인생은 주님의 초청을 등지고 자신이 고안한 우물을 파기에 열중한다.

거기 생수가 솟아났던가?

아니다, 결단코 생수는 솟아나지 않았다.

헛된 수고로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할 때 자비의 빛줄기는 어두운 마음에 비취신다.

주님은 자비하셔서 자아의 굴레를 벗지 못한 영혼에게도 빛을 보내사 생수를 얻을 곳을 알게 하셨다.



곧 이 때라! 너의 마음에 비췬 빛의 지도를 따를 때는 곧 이때라.



*나의 믿음 연약할 때 주님은 나의 방패이시며 산성이시다.

나의 주님은 언제나 내 곁에 계셔서 나를 자비의 눈길로 지키고 계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편 42:5)



사랑의 주님, 섰다고 생각할 때 넘어지는 것을 다시 깨닫사옵니다. 주님 안 계시면 한 시도 설 수 없는 자신의 연약함을 절실히 느끼옵니다.

주님 오시옵소서. 들어오셔서 내 마음을 온전히 점령하여 주옵소서. 다른 아무 것도 틈타지 못하도록 주님 홀로 소녀의 마음에 가득 차서 기쁨 충만하게 해 주옵소서.

주님을 아는 지혜를 더 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마음 되게 하소서. 외로움과 슬픔은 멀리 가고 기쁨만이 밀물로 가슴에 밀려들게 하옵소서.

환경이 어떻든지 건강이 어떻든지 그런 것이 나의 심경을 좌우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오직 주님을 모신 기쁨에 다른 모든 것이 삼켜지게 하옵소서.

주님은 나의 전부가 되시고 주님은 나의 생명이 되셨나이다. 나의 장래도 주께로 말미암은 소망 가운데 빛나고 있나이다. 이제 나의 이 길은 영원에로의 아름다은 길이니이다.







4장



1. 주님의 소원을





어두운 새벽길 가로등 하나 둘 지나며 걸어가면 하늘에 반짝이는 크고 작은 별들은 마치 하늘의 보석 같다.

“주님, 저 무수한 별들을 기억하고 계시듯 이 땅의 이름 없고 보잘 것 없는 사람도 다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사랑하는 딸아, 하나님의 눈에는 아무리 이름 없는 사람,아무리 연약한 사람일지라도 다 소중한 생명이니라.”

나는 깨달았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있으나 마나 했던 이 미천한 생명을 진토에서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니냐!’나의 생명이 오늘까지 있음은 오직 주님의 은혜로다.



PMC(Pioneer Memorial Church) 정문 앞 시멘트 바닥에 무릎 꿇고 주님 앞에 아뢰고 내려오니 키 큰 미국 청년이 내 앞에 다가서서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당신의 기도가 응답되기를…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시기를……”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더욱 감사함이 넘치는 길이었다.



8월부터 9월은 풀벌레들의 현악 연주의 미묘한 가락에 마치 하늘 음악을 듣는 듯한 황홀경 속에 영혼을 새벽이슬과 함께 적시는 그 오묘한 가락에 내가 동화되고 주께서 또한 하나로 연합하신 새벽길의 산책이었다. 나는 천국 낙원에 주님과 함께 걷는 듯…주님과 함께 호흡하며 한 마음으로 한 길을 가고 있음을 실감하였다. 그 가락이 들리지 않는 교정에까지 그 가락을 음미하며 걸아오는 동안 주님은 내 안에 충만히 임하여 계셨고 나와 함께 걸으시는 주님이셨다.



서서히 어둠은 걷혀가고 나는 PMC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만민의 기도하는 집"(THE HOUSE OF PRAYER FOR ALL PEOPLE)이란 큰 글씨가 새겨져 있는 교회 정문 앞에 무릎 꿇고 엎드릴 때 나의 기도와 눈물을 받으시고 응답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느낀다. 손자들이 다 주 안에 건재함이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감사하며 주님은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더욱 깊이 느낀다.

3년 전에 내가 이 자리에서 올린 기도---

“주님, 만 명의 영혼을 주십시오. 그들을 주께로 인도하게 하소서.”

그 순간 나는 만 명은 너무 적다고 느꼈고,

“주님, 십만의 영혼을 주십시오. 그들을 주께 인도하게 하소서.”

하고 다시 아뢰었다. 그렇게 아뢴 후부터 그 생각이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여 십만 명을 인도할 수 있을까? 편지를 쓴다 해도 할 수 없는 일이고….책을 써서 전해야 되겠지….’



오래 전, 약 15년쯤 전에 딸이

“엄마, 할머니와 손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책 한 권 써 보세요.”했던 그 말이 문득 생각났다. 그리고 몸이 아플때는 언제나 ‘내가 받은 바 은혜를 나누지 못하고 잠들면 참으로 주님꼐 죄송한 일이다.’하고 마음이 아팠었다.

드디어 “영혼을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드린 얼마 후부터 내 마음에 “할머니와 손자들”이라는 책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신의 무능함을 너무나 잘 아는 터라 내겐 너무나 엄청난 큰 일 같아 시작할 엄두를 못내고

‘이 책이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죄지은 이 작은 별세계의 인간을 구속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을 드러내는 책으로 씌어져서, 이 세상 흑암 속에 있는 영혼들을 주께로 이끌어내는 사명을 다하는 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내가 감히 어떻게 그런 책을 쓸 수 있을까?’

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서 놓여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에 거듭 거듭 강한 감동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의 말씀.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나라”(눅 18:27)

“여호와께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창 18:14)



그래도 나는 시작도 못하고 시간만 흘러갔다. 다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그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겨도 기도할 땐 믿음이 있는 사람 같은데 책을 쓰려고 하면 겁보가 되는 것이었다.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딜레마(dilemma)에 빠지는 것이었다. 책을 쓴다는 것은 내겐 엄청난 도전이었다. 나는 주님께 이렇게 아뢰었다.

“이것이 제게 주신 사명이라면 저 자신은 너무나 부족하여 할 수 없사오니 다만 성령님의 도구가 되기 원합니다. 성령님께서 소녀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이 책을 쓰시옵소서. 주님께서 늘 함께 하시옵기를 바랍니다.”

나는 여성 선교회 기도 반에 이 기도 제목을 내놓고 기도를 요청하였다. 또 몇 달이 지나갔다. 내년 봄에는 꼭 본격적으로 그 일을 해야지 하며 봄을 기다렸다. 그러나 4월부터 8월까지 한국에서 미국에서 내게 가장 가깝고 반가운 손님들이 와서 책 쓰는 일은 또 뒤로 밀리게 되었다. 즐거움의 시간들을 보내면서도 마음의 부담 때문에 시시 때때로 괴로웠었다. 사랑하는 친구와 동생 내외와 마음 턱 놓고 즐기지도 못하고 글도 잘 쓰지 못하고 마음 괴롭게 몇 개월이 흘러갔다. 손님에게도 마음껏 대접 못하고 하나님께도 충성 못한 날들이었다.



11월에 손녀 가족이 다니러 와서 12월 초에 돌아가면서 겨울 동안 따뜻한 곳에서 지나시라고 하면서 나를 데리고 갔다. 손녀는 미리부터 준비해 놓고 나를 기다렸던 것이다.

길고 큰 책상, 편한 의자, 나의 책들과 글 쓰는데 필요한 물품을 놓을 수 있는 가구, 옷장, 크고 편한 침대, 자기 집에서 제일 햇볕이 잘 들고 공기가 잘 유통하는 좋은 방에 내가 글을 쓸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았었다. 손녀는 이렇게 말하였다.

“할머니, 할머니는 이제 여기를 할머니의 겨울 집으로 하세요. 그리고 미쉬간(Michigan)의 집은 여름 집으로 하시고요. 할머니는 부엌의 일은 걱정 마시고 현미밥은 이사벨라 때문에 언제나 해놓으니까 그냥 떠 잡수시기만 하면 되요. 할머니는 쉬고 싶으실 때 이사벨라하고 조금 놀아주시기만 하면 되요.”했다.

나는 비로소 마음을 잡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따뜻한 캘리포니아 로마린다 손녀의 집에서….



아르칸사스(Arkansas) 동생 집을 거쳐 장장 4개월의 긴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것은 4월6일, 꼭 만 4개월만에 집에 돌아온 것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획기적인 진도가 없이 지지부진, 나의 책 쓰는 일은 또 답보의 상태에 머무르고 말았다. 오랫동안 여행하다 돌아왔으니 안팎으로 할 일도 많았다. 날마다 주님께 죄송하다고만 아뢰면서 책 쓰는 문제만 나오면 떳떳하지 못한 자신을 보는 것이었다. 기도를 부탁 받았던 분들은 나만 보면 책 쓰는 일이 잘 되어 가느냐? 혹은 이제 다 되어 가느냐? 등 책에 대한 안부를 물어 오시는데 정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되는 것이었다. 책을 쓰기 위해 영어로 쓴 책들을 사전과 씨름하며





2. Sep. 14. 2005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라(셀라)”(시 62:8)



날마다 시간마다 순간마다 필요한 분

우리의 보호자인 그분께 의지함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오늘 다시 깨닫네



이 한 날 예비하신 평강의 그늘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 속에 나 살리라

말씀으로 내 영혼 살찌며 종일토록 행복하리



천성을 향하는 길 주께서 예비하신

그 길 나 걸으리라 주의 손 이끄실

영원한 그 날 그리며 감사하며 걸으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오늘 Ben이 나를 은행과 약방과 동양식품점에 데리고 간다 했기에 언제 올지 몰라)책상 앞에 앉아 책을 쓰다가, 또 오늘은 Ben이 번역을 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영어로 고쳐 쓰느라 1 page 이상 스스로 번역하다가 Ben이 올 시간이 촉박하다고 느껴져 어려운 데만 영어로 쓰고 배가 고픈데도 참고 쓰다가 할수없이 점심을 먹고(4 시가 거의 되어) 다 하고 보니 다섯 시가 가까워오는데 전화가 왔다. 곧 오겠다는 것이다. 밖에 나와 있으라는 했다. 은행 시간 때문에 바로 은행에 갔다. 참 기이한 일은 이제까지 한 번도 나는 내 페스포드나 증명서가 든 지갑을 가지고 은행에 간 적이 없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지갑을 가지고 가고 싶어 다 준비한 후에 헨드백에 집어 넣었는데 증명서를 보이라는 것이었다. Ben의 말이 차에 타고 있어 잘 안 보이니(우리는 두 번째 라인에 써 있었다.)그랬을거라고 했다.



Ben은 오늘은 자기가 매우 바쁜 날이었다며 job 찾는 서류를 작성하느라 오늘 밤까지 컴퓨터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은 책 번역하는 일은 할 수 없고 내일 오후 1 시에 오겠다 했다.

나는 종일 기다렸지만 그는 그대로 자기 일이 바빴던 것이다. 그런데도 할머니를 도우는 손자가 갸륵하다.





3. Sep. 15. 2005


오늘 빵을 두 개 만들었다. 하나는 Joice 엄마를 주려고...

빵을 준다고 했더니 Joice(기쁨이) 운동 시키면서 들렸는데 언제나 잘 미소 짓던 기쁨이가 오늘은 한 번도 웃지 않았다. 내가

“기쁨아, 잘 있었니?”하여도 쳐다보기만 하지 웃지는 않았다. 파리한 얼굴빛에다 기쁘지 않은 얼굴이었다.

기쁨이 엄마 말에 의하면 기쁨이가 감기가 들었단다. 아빠가 감기가 들어 엄마한테 옮고 또 엄마한테서 기쁨이에게, 그리하여 온 가족이 감기로 앓고 있단다.

내가 빵을 주니까 기쁨이 엄마가 빵을 받아들고

“혹시 콩우유나 콩가루 같은 것 넣지 않으셨어요?” 하고 물었다.

내가 아니라고 대답하니까 다시 남편의 말을 받아 내게 또 묻기를

“혹시 soy bean 기름 넣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내가 “아니 올리브 기름을 넣었어요.우리 집에는 soy bean 기름은 없어요.”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를 되플이하고 빵 냄새를 맡으며 해서 나도 웃음이 나왔다. 빵 하나의 작은 선물에 이토록 좋아하는 사람들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기쁨이까지 빵봉지에 코와 입을 갖다 대며 냄새를 맡으며 비로소 그 귀한 웃음을 빵긋 웃았다.

기쁨이 아빠가 soy bean 알레지가 있어서 soy bean들어간 것만 먹으면 숨이 차고 얼마나 고생하는지 모른다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해바라기씨 아니면 콩가루를 2 테이불 스픈 쯤 빵 구울 때 넣었었다.해바라기씨 갈아놓은 것이 없어서 요즘은 내내 콩가루를 넣다가 오늘은 콩가루는 있는데도 넣지 않고 구웠다. 아예 오늘 아침에 기쁨이 엄마에게 오늘 빵 줄거라고 애기 운동 시킬 때 들리라고 했었다.

참으로 신기하다. 요즘 빵을 자주 나누는데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이 해바라기씨 가루나 콩가루를 넣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모르는 사실을 다 아시니 내게 콩가루를 넣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어제의 일과 오늘의 일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닌 것이다. 전에는 가져가지 않던 지갑을 어제 가져가서 은행 볼일을 잘 보게 하신 일이나, 비록 아주 작은 일, 이웃에게 빵 하나 구워주는 일에까지 하나님의 배려가 함께 하셨다는 것이다. 참 놀라우신 하나님,이땅 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관심과 자비와 사랑이 함께 하신디는 것을 깊이 느낀다.



4. 누가 일으켰나



March 19, 2007



눅가복음 18 : 27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참으로 놀아웠다.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었다.

1 월부터 2 월까지 눈이 엄청나게 많이 왔다. 이곳 Michigan에 와서 살아오는 동안 큰 눈은 본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이번 겨울만큼 계속적으로 퍼붓고 퍼부은 적은 없었다.

눈더미가 태산같이 쌓이고 또 쌓였다. 아직도 대학 교정의 여기 저기에 눈더미의 잔영(殘影)들을 볼 수 있다.

사람이 문밖으로 나가기 위해 길을 만들어야 했으니 매일같이 오는 그 많은 눈을 정원수(bush)들에 퍼부어댔다. 눈 쳐주는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키가 작은 bush나 좀 더 큰 bush나 또 더 큰 bush,다 같이 그 무거운 짐을 지고 3 월이 될 때까지 견디었다.

3 월 초순이 지나자 바람이 순해지고 햇빛이 도타와졌다. 그런 날씨가 며칠 계속되자 그 견고하던 눈의 아성(牙城)이 허물어지면서 정원수들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보라! 그것은 너무나 참혹한 모습이었다. 어쩌면 모조리 불구다 되어 있었던 것이다. 허리가 완전히 구부러져 땅에 엎드러져 있는 사철나무를 일으켜 보려고 했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키가 작고 동그랗게 깎은 다른 정원수들도…모든 눈짐을 지고 있던 bush들이 다 사방으로 너부러져 있는 모양에 나는 어찌 할바를 몰랐다. 나는 그 눈 풍년 속에서 어찌 할 수가 없었음에도 너무나 가엾은 관목(灌木)들 때문에 주님께 용서해 주시기를 빌었다.

“사랑하는 주님, 너무나 큰 짐을 이 연약한 관목들에게 지웠던 것을 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주님의 뜻이오면 이 나무들을 치료해 주세요.”



오늘이 3월 18 일,아들 내외가 목요일에 와서 아들이 오늘 정원에서 일을 하였다. 나는 금요일에 아들에게 하나님께서 관목들을 치료하셔서 바로잡아 주시고 계시는 경이로운 일을 흥분하여 얘기하였었다.그러나 오늘 바라본 정원수는 전날보다 더 온전히 원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으니 참으로 놀라웠다!



놀러왔던 손부와 증손자들이 식사한 후 떠나고 아들의 의대 선배인 김박사 생일 파티를 위해 며느리는 몇 가지 요리를 하여 3 시에는 꼭 떠나야 한다 해서 설거지는 그냥 두고 가라고 재촉 재촉 하여 보내고 허리띠를 띠지 않고 현관의 베큠과 뒷설거지를 하였다. 3 시간 이상 서 있으니 너무 피곤했으나 허리를 주님께서 고치고 계심을 믿었다.

샤워를 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잠을 청했다.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지금 막 자기들 거처에 도착했다는 아들의 전화였다. 작년에 부인을 잃고 외로운 중에 있는 김 박사가 기뻐했고 좋은 자리였다고 말했다.



나는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내 몸을 잘 관리 못 하여 허리가 굽고 디스크로 고생하고 있지만 죽음에 직면했던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오늘의 평화와 감사와 기쁨과 행복에 가득한 생애를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그 높고 깊고 넓은 사랑을 어찌 측량할 수 있겠는가! 나는 참으로 폐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나를 찾아오셔서 거듭거듭 격려하시고 매일 매일 일으켜 주시고 용기 주셔서 오늘에 이르게 하셨다. 나의 못남과 비뚤어짐과 흠과 자폐의 정신을 보지 않으시고 하나님 안에서의 소망과 기쁨과 감사와 찬양으로 소생시키시신 그 은혜는 한 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서였다.

지금 내게 가장 가까우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자나 깨나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나는 살아 있고, 기동하며, 말하고, 숨쉬며, 모든 활동 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행복하다.



“그 누가 일으켰나 그 나무를?”

“그 누가 일으켰나 그 영혼을?”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그 정원수들을 일으키신 하나님,

바로 그분이 나의 영혼을 일으켜 주셨다!

그리고 살게 하여 주셨다!



*찬양하리로다!

사랑의 주님을—



온 세상에 그 한 사람 뿐인 것 같이

그를 사랑하시는 그 극진하심

주님의 사랑은 측량할 길 없네



험난한 바다도 태산 준령(泰山峻嶺)도

마다 하지 않고 찾아오시는 주님은

한 영혼 위해 온 사랑을 쏟아 부으셨네



나 위해 모든 것 주신 주님은

지금도 고투하는 영혼을 찾아 천만리(千萬里)를 가시네

오직 그 한 영혼 위하여 모든 장애를 뚫고 전진하시네



놀랍도다, 주의 사랑!

악과 싸움하는 영혼아, 깨어나라, 쳐다보라!

성령의 검으로 악한 영을 단칼에 베시는 주를 바라보라!



너 승리하리라, 주께서 승리하신 그 말씀으로

전진하라, 주를 따라 전진하라

너 마침내 승리자로 주 앞에 서리라!





5. Apr. 1. 2008





유다서 1: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하나님의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설 수 있는 자가 된다는 것이 자신의 노력으로 힘으로 또는 능력으로 될 수 있는 일일까요?

이제 83 세가 넘은 한국 나이로는 85세가 된 지금에 와서 깨닫는 것은 나는 무력하다는 것이다. 만일 내게서 예수 그리스도가 빠져버린다면 바로 그 순간 나는 무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된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는 우리 구주! 그분 때문에 내가 살아 있고 존재할 가치가 있고 꿈이 있고 소망이 있으며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매일의 생애가 벅찬 감동으로 시작되는 거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바라보며 용기 얻고 희망이 솟아나고 희열로 맥박이 뛰고 건강하고 보람있는 하루가 열린다. 주 예수님 살아 계시기에 내가 살아있고 주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내 이웃이 내게 사랑스러운 이웃인 것이다. 주께서 소중히 보시는 영혼들이기에 말성꾸러기 청소년들도 귀하고 애착이 가고 소중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보이며 ‘저 아이들이 자라나는 과정이라 그렇지. 저 시련 속에서 씨름하며 큰 인물들로 자라겠구나. 하나님의 좋은 일꾼들로 자라나리라.’하고 미소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나이 많은 할머니가 되어서도 아직 우리 주님 앞에서는 어린아이인 자신을 생각하며 그 아이들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주님,

인생의 초보생인 저 아이들

하나, 하나,

주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사랑하고 계시지요?



그 사랑의 마음,

주님의 마음을

소녀에게도 주셔서

사랑하게 해 주세요. 기도하게 해 주세요

열렬히, 열렬히, 쉬지 않고---



주님의 보좌에

그 기도 이르고

아버지께 상달되도록

사랑하는 주님,

당신의 중보의 말씀 끊이지 말아 주세요



각 사람의 형편을 아시는 주님,

오늘 그 각 심령 속에

주님의 영 부어 주세요

그들의 각 심령에 깨우쳐 주세요

주님의 사랑 깨닫고 돌아오도록



그리고 그 영광의 새 아침에

저희 각 사람이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해 주세요
작성자 : 정무흠        2018-08-12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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