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오후, 아이들을 재우려고 누웠는데 금방 잠이 오지 않았는지 은총이가 어느새 내 배 위로 올라와 “빵빵” 하며 비행기며 자동차를 타고 한참을 놀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친정 엄마는 꽤나 무거운 아이의 움직임에 신음(?)하던 딸의 편을 들어 주시려 “은총아. 엄마는 할머니 딸이야. 괴롭히지 마.”라고 하셨다. 은총이는 빙긋이 웃고만 있는데 혼자서 조용히 놀던 은하가 그 말을 듣더니 “은총이가 울려고 그런다.” 하며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은하야. 은총이 안 울어. 괜찮아.” 했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그럼, 나는 누구의 딸일까?” 하는 것이었다. 33개월 된 어린아이의 마음에도 자신의 근원에 대한 불확실성에 눈물이 터져 나오는 때가 있다니….
새삼 놀랐다. 5년 전, 대학원 논문 학기에 쌍둥이를 임신하고 바로 이듬해에 첫 목회지로 발령받은 남편을 따라 난생 처음 목회자의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부여받았던 그때, 낯선 환경과 해야만 하는 수많은 목록 앞에서 그저 쩔쩔매며 울곤 했던 그때, 아침마다 되뇌던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누가복음 3장 38절)라는 구절이 갑자기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족보상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생소한 인물들의 나열. 그리고 그 끝에 계시는 하나님. 끝도 없이 계속될 것만 같았던 선조들의 이름 끝에 하나님을 발견하고는 ‘유레카!’ 외치듯 깨달았다. 아담의 아버지가 하나님이듯 내 아버지 역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은하, 은총이가 커 가면서 하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엄마, 난 하늘나라에 가면 기린을 탈 거예요.” “왜?” “포도를 따 먹으려면 기린처럼 키가 커~야 해요.” “맞다!” 하루는 은하가 하늘에는 복숭아나무, 사과나무, 무화과나무가 있을 거라고 말하자 은총이가 이런 대답을 했다. “하늘에는 십자가 나무도 있어.” 십자가 나무. 아마도 아이 생각에 십자가는 나무(wood)로 만들어졌으니 십자가 나무(tree)도 있을 거라 생각한 것 같다.
솔 벨로우(Saul Bellow)가 말했듯 “모든 사람은 고아로 태어난다.” 육신의 부모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저마다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형태의 괴로움과 상실이 매순간 우리를 고아로 만든다. “그럼, 나는 누구의 딸일까?”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고통의 순간 앞에서, 혹은 누구도 해결하거나 위로할 수 없는 일들을 마주할 때, 때로는 일상에 지쳐 주위를 둘러봐도 쉴 곳 하나 찾을 수 없을 때, 내가 누구의 자녀인지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온 세상과 우주의 주인 되시는 생명의 왕께서 나의 친아버지라고 생각하면 힘이 번쩍 솟지 않겠는가? 정 힘이 안 날 때는 이렇게 외쳐 보자. 지난가을, 어느 공연을 본 후 틈이 날 때마다 두 손을 번쩍 쳐들고 외치는 은하, 은총이처럼! “힘내! 힘내! 하나님은 우리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