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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저를 살렸어요. 난소암을 딛고 일어선 김지영 씨 회복 | 2010년 3월호 36쪽


 바쁜 생활, 나쁜 식생활
 그때는 딸이 6살이었다. 김지영 씨는 남편과 동생이 함께 운영하는 창고형 할인매장에서 함께 일했다. 아침밥 먹고 9시에 출근하면 밤 10시까지 일했다. 정리하고 밤 11시에 집에 오면 밥을 잔뜩 먹고 12시에 잤다. 일요일에도 일해야 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녀의 식성은 변해 있었다. 어머니가 본래 육식을 안 해서 주로 생선에 찌개, 나물 반찬을 해 주셨고 학창 시절까지는 으레 그렇게 식사했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식성이 달라졌다. 어렸을 때 안 먹어 보던 음식이라서 그랬는지 햄버거, 피자, 자장면, 돈가스, 돼지갈비 등 사 먹는 음식, 패스트푸드, 육식이 입에 착착 붙었고, 자판기 커피도 하루 7, 8잔은 기본이었다. 게다가 폭식, 간식을 자주 했다. 결혼 후에도 딸을 데리고 패스트푸드점을 자주 찾았다.

 난소암 3기 말 진단
 처음 몸에 이상을 느꼈을 때는 2003년 11월 어느 날이었다. 남편 사업을 도와 일한 지 8개월 남짓 흐른 뒤였다. 너무 피곤했다. 잠자다가 소변 때문에 10번씩 일어났지만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병원을 찾았으나 난소암 3기말이라는 진단.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단 말인가?’ 딸아이 낳고 1년 후 우측 나팔관 물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었다. ‘그때는 암이 아니라고 했는데, 경계성 종양이 잘못되어 암이 되려면 10년이 걸린다며 병원에서는 걱정 말라고 했는데….’그녀는 이성을 잃고 거의 반 미친 느낌이었다. 밥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얼굴이 점점 노랗게 변했고,복수가 차서 배가 불러왔다. 대소변도 나오지 않았다. ‘조심하라고 말만 해 줬어도 이 지경까지는 안 되었을 텐데.ʼ라는 원망과 함께 불신, 배신감, 슬픔이 물밀듯 밀려왔다. 병원 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어떻게 또 병원에 나를 맡길 수 있단 말인가?몸은 마르고, 복수가 점점 차올랐다. 이웃에서 뜸과 침을 맞았다. 또 소개받은 한의사가 지어 준 약을 먹고, 가르쳐 준 대로 소금기를 제한 채식을 했다. 물도 많이 마셨다. 통증이 조금 덜한 듯했다. 하지만 호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다시 병원을 찾았지만 항암치료를 해도 살 가능성은 10~20퍼센트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병원 치료는 받지 않기로 다시 한번 결심했다. 사정을 들어주는 병원을 찾아 차오르는 복수를 빼는 일만 반복했다.

 희망은 어디에?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집을 정리해 경기도 곤지암으로 이사했다. 앞길이 꽉 막힌 듯 보였지만 아직 끝은 아닌 듯했다. 바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김지영 씨에게 바른 식생활을 가르쳐 주었고, 조건 없는 사랑을 가르쳐 주었으며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산책을 가던 길에 우산을 빌려 주었던 노부부 집을 우연히 방문했고, 거기서 건강 식생활을 배웠다. 그분들을 통해 진정한 뉴스타트를 소개받았다. 뉴스타트 채식요리 강습회에 초대받아 곤지암교회에 갔고, 교회의 도움으로 여수요양병원에도 갔다. 좁은 방에서 비참하게 투병생활을 하던 그녀에게 그곳은 천국 같았다. 치료도 받고, 같은 처지의 암 환자들과 함께 대화도 하며 편하게 지냈다. 건강 식생활의 진수를 거기서 배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통해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1개월을 기약하고 갔었는데 8개월을 지냈다. 집으로 다시 돌아와서는 수동에 있는 에덴요양병원도 갔다. 또 이상구 박사 세미나에도 참석했다. 조건 없이 베푸는 사랑 속에 그녀는 자연스레 교인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참을 수 없는 눈물만
 이제는 그만 편하게 죽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장이 꼬였다. 의사는 꼬인 장이 자연적으로 풀릴 가망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가족에게도 희망이 없다고 통보한 듯했다. 병원에 있으려면 항암치료를 하라고 권했다. 삶을 연장한다는 게 그녀에게는 더 이상 의미가 없이 느껴졌지만 항암치료를 받기로 했다.그리고 2주 안에 죽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4일에 걸쳐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했고, 항암주사를 맞았다. 맥박이 175까지 상승했다. 링거로 연명했다. 그렇게 열흘이 지난 어느 날 신기하게 꼬인 장이 풀렸다. 퇴원한 후 교회 목사님의 간곡한 권유로 국립 암센터에 갔다. 의사는 난소암 3기 말 진단을 받은 사람이 3년이 넘었는데 복수를 빼내면서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이렇게 걸어 들어올 수는 없다며, 난소암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했다. 은근한 기대가 생겼다. 수술 날짜가 잡혔다. 12시간의 대수술이었다. 맹장을 포함, 경계성 종양, 암덩이, 배꼽까지 12군데에서 1.6킬로그램을 떼어 냈다. 의료진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사랑이 함께한 7년
 이제 그녀가 난소암 3기 말 진단을 받은 지 7년이 흘렀다. 그녀는 지금 김포에 산다. 딸아이가 5학년이 되던 해에 이사를 왔다. 이제는 가족이 함께 살기로 했단다. 작년 7월까지만 해도 여전히 병원에서 복수를 뺐었다. 반복되는 통증이 또 엄습해왔다고 했다. 김지영 씨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참 많이 진 사람이에요. 장이 꼬여 처참한 상태로 있을 때 비참함이 이런 거로구나라고 강하게 느꼈어요. 사람이 가볍게 대는 손길도 아팠어요. 온갖 검사를 다하는데 사람들 표정은 굳어 있고, 마치 죽기 직전 짐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생각했죠. ‘폭도에게 둘러싸여 죽음을 맞이하는 예수님의 심정이 이랬을까?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위해 그 모든 고통을 참으셨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데 마침 교회에서 방문을 왔어요. 이제껏 보잘 것 없는 나를 감싸 주고 아무 조건 없이 아낌없이 도와준 분들. 나를 위해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해 준 고마운 분들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서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어요. ‘난 아무런 노력을 해본 적도 없는데…. 수도 없이 마음으로 포기했었는데….’그때 태어난 후 처음으로 제대로 엉엉 울었던 것 같아요.”그녀는 작년 7월 이후론 더 이상 복수가 차지 않는다고 한다.
 이야기하는 동안 그녀는 아주 밝은 표정이었다. 더 이상 노란 얼굴, 깡마른 몸에 복수가 차서 배만 불룩한 모습도 아니었다.그녀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평온한 얼굴이었다. 뉴스타트를 실천하며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고 있다. 그녀는 분명 난소암을 딛고 일어섰다. 의학적으로 볼 때, 의아한 일로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힘든 투병생활 동안 사랑은 그녀에게 희망을 주었고, 그녀를 살게 한 힘이었으며, 앞으로도 그 조건 없는 사랑의 추억이 그녀와 영원히 함께할 것을 믿는다.
 최재준
본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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