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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성은 교통의 놀이, 합병이 아니다 |
부부 행복과 아름다운 성(性) | 2010년 3월호 3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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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부는 바람은 여전히 차갑다. 꽃샘바람이다. 잔가지를 지나 그 기둥을 지나는 바람은 나무뿌리까지 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그 속엔 희망이 있다. 서릿발 선 대지에 뿌리를 견고히 내게 하는 의지와 꽃을 피우려는 강한 생각이 들어 있다. 그래서 3월의 바람은 생동하는 노래이며 생명력의 흐름이다. 서로 간의 교통을 위한 이치이다. 바람은 생명을 위한 소통이요 상호 교제의 한 방법이다.
교통이지 합병이 아니다 폴 스티븐스는 “교통(intercourse)은 합병(merger)과는 다르다.”며 성교(性交)를 소통(communication)의 중요한 정점으로 설명한다. 섹스는 곧 친밀한 연합을 통해 더 깊게 통합된 자아를 발견함으로써 둘이 하나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즉, 부부 정체성이나 개성을 상실하지 않는 인격적 교통이다. 스티븐스 박사는 여기에서 ‘섹스 놀이ʼ라는 표현을 했다(폴 스티븐스, 영혼의 친구, 부부, 89~92쪽 참조). 부부의 성은 다음 일곱 가지 의미를 지닌다. 부부의 성은 하나님이 고안한 작품이다.부부의 성은 부부 관계의 혈맥이다. 부부의 성은 사랑의 정감 깊은 언어이다. 부부의 성은 순도 높은 대화이다. 부부의 성은 고상한 환희의 교통이다. 부부의 성은 부부의 한 몸을 위한 친밀 표현이다. 부부의 성은 하나님의 고귀한 선물이다. 그리고 또 하나를 덧붙인다면 부부의 성은 가장 고상하고 유쾌한 놀이이다.
유쾌한 안식의 놀이 성은 부부를 위한 안식(安息)의 놀이(play)이다. 깊은 안식에 대한 갈망이 상대의 품에 안겨 있다. 그 품이 하나가 될 때 갈망보다 더 깊은 안식이 되고 놀이의 유쾌함이 드러난다. 숨김없이 터놓고 상대를 섬기기 위한 놀이는 상호 간에 깊은 쉼과 신뢰와 만족의 안식을 준다.바로 부부의 성이 주는 선물이다. 이를 통해 부부는 위안과 행복을 경험하며 상호 간의 관계를 견고하게 한다.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섹스는 하나의 테크닉, 즉 습득된 기술로 전락해 버렸다. 강압과 두려움과 지루함으로 나타난다. 부부간 성생활에 대한 설렘이나 즐거움이 사라지는 대신 배우자에 대한 실망, 배신감, 증오, 공포, 폭력등이 자리를 잡는다. 그에 대한 대화도 없고 불만이 쌓이면서 아름다운 부부의 놀이는 풀 죽은 의무요 억지가 된다. 그렇게 우리 사회엔 부부 사이인데도 성생활을 하지않는 ‘섹스리스 부부’가 늘고 있다. ‘섹스리스’란 한 집에 사는 부부가 특별한 이유 없이 최근 2개월간 월 1회 미만의 성관계를 가졌거나 그런 경우가 자주 생길 때를 말한다. 한국성과학연구소는 “우리나라 20~40대 부부 10쌍 가운데 3쌍이 섹스리스 부부”라고 밝혔다.
놀이의 즐거움 부부에게만 속한 특허, 즉 섹스 놀이의 황홀감은 서로 상대에게 제공하는 배타적인 선물이다. 놀이의 핵심은 즐거움이다. 이 놀이에 참여하는 부부는 규칙을 따라야 한다. 그것은 바로 배려라는 규칙이다. 상대를 먼저 위하는 부드러운 노력과 성의이다. 서로 좋아하고 인정하며 반응하는 과정은 더 건강한 즐거움을 생산한다. 기대와 설렘의 긴장감, 나눔으로 배가되는 성취감 그리고 교통의 기쁨은 부부에게 특권으로 주어진 섹스 놀이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건강한 부부의 섹스 놀이는 합병을 추구하지 않는다. 내 속만 강압적으로 채우지 않는다. 그건 교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통으로 상대방의 가치와 정체를 인정하며 함께 즐거움의 여정으로 들어가라. 부부의 아름다운 섹스 놀이의 자연스러운 산물인 친밀한 소통과 환희, 거룩한 유희를 부부간에 서로 유통하라.3월에 부는 바람이 부부의 가슴을 지나면 교통의 원활한 흐름으로 행복을 선사할 것이다.
박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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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가정과 건강 편집자 ‘가정사역’ 전공, 목회학 박사. ‘부부 친밀 여정’ 프로그램 고안자이며 그 가이드 역할을 즐겨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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