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에도 “의심스러운 것은 질문하라.” 하였다. 그러므로 의심은 결점이 아니다. 다만 의심의 방향이 문제다. 그리고 늘 의심하면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결점이다.

 한 변호사가 아름다운 여인과 깊은 사랑에 빠졌다. 그러자 절친한 친구가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할 것을 충고한다. 이유인즉 그녀가 최고급 매춘부라는 것이다. 하지만 변호사는 그 말을 믿지 않고 둘은 마침내 결혼을 한다. 그러나 결혼 후 아내가 종종 집을 비우는 것을 알게 되자 아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매춘을 연결해 주는 가게를 알아내고는 자신이 직접 손님으로 가장하여 구체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여성을 부탁한다. 며칠이 지나 가게 주인에게 연락이 왔는데, 자신이 약속되어 있는 날 아내도 외출 약속이 있음을 알게 된다. 긴장된 마음으로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 가 보았으나 상대 여성이 사정이 생겨 나오지 못한다는 전갈을 받는다. 집에 돌아온 그는 자기 아내도 사정이 생겨 외출하지 않았음을 안다.
 그 후로도 여러 번 자신의 약속 날과 아내의 외출 계획이 동시에 이루어지는데 그때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만남이 이뤄지지 않는다. 모든 상황이 점점 확실하게 맞아떨어져 가면서 그의 의심은 이제 확신으로 바뀐다. 드디어 우여곡절 끝에 문제의 상대방을 만나게 되는데 방에 들어서는 여성을 보는 순간 자신의 아내가 아니었음을 알고는 미친 듯 뛰쳐나와 집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그는 자살한 아내의 시신을 발견한다. 아주 오래된 ‘약속’이라는 영화 이야기이다.
 남녀 간의 의심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이다. 그리고 의심에서 나오는 질투는 맹렬하다. 잠언은 “배가 고파 굶주린 배를 채우려고 도둑질하면 사람들이 그를 멸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간음하는 자는 지각이 없는 자이다. 그는 자신을 망치고 있을 뿐 아니라 얻어맞아 상처를 입고 모욕을 당하며 언제나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남편이 질투함으로 분노하여 복수하는 날에는 그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잠언 6장 30~34절,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한다. 그런데 가장 심각한 것은 근거없는 주관적인 신념, 사실의 경험이나 논리에 의하여 정정되지 않는 빗나간 확신 때문에 하는 의심이다.

 빗나간 확신이 주는 의심과 질투
 부정망상(不貞妄想, delusion of infidelity)은 병이다. 이 병은 부인 또는 남편이 상대방의 정조(貞操)를 의심하는 것이다.이는 다른 정신과적인 증세가 없는데도 배우자가 성적으로 부정한 행동을 하여 자신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느낀다. 망상적인 증상을 기본으로 하는데, 치료에 대해 저항적이며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람들은 배우자를 의심하다가도 아니라는 증거가 확실하면 믿는다. 그러나 이 질병 환자들은 아니라는 증거가 확실해도 믿지 않고 오히려 배우자가 부정하다는 증거를 찾고 싶어 한다. 또 배우자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망상에 따른 이상행동을 동반한다. 보통 전체 인구의 1~4퍼센트 정도는 이 질병 환자이고, 대부분 35~55세 사이에 발병한다. 사회적 요인, 성윤리 의식변화, 매스컴, 피임 방법 개발 등으로 인해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 질병 환자들은 자신의 망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를 찾기 위해 도청, 비디오 촬영, 미행, 폭력, 협박 등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는 정상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실제 치료로 연결하기가 매우 어렵다. 또 의사도 환자의 망상 속의 한인물이 되기 쉽기 때문에 정신과 질병 가운데 가장 까다로운 병으로 알려져 있다.

 의심은 자신에 대한 불만족에서 시작된다
 이 질병이 있는 사람은 배우자에 대한 열등감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지기 싫어하고, 샘 많은 성격에 열등감까지 겹쳐 자존심의 손상이 깊을 때 투사기제로 배우자를 의심하게 된다.자신이 바람 피우고 싶거나 동성애적 경향이 있을 때도 같은 증세를 보인다. 그 밖에 실제로 부부생활에 문제가 있을 때, 특히 여성의 경우 갑자기 성생활의 횟수가 줄거나 문제가 있을 때 일시적으로 의부증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성장 과정에서 부모가 적대적이고 지배적이어서 아이에게 두려움이나 불안을 느끼게 하거나 부모가 알코올중독이나 편집증이 있는 경우, 구박을 많이 받고 자란 경우도 심리적 원인으로 작용한다.이 병은 망상증의 일종이므로 항정신성 약물치료를 요한다.
 이런 망상장애 환자들은 약물 사용에 대해 의심이 많고 피해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므로 환자의 관계 형성과 더불어 약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불신과 열등감이 많으므로 비판하거나 설득하려 해서도 안 되고 비위를 맞추려고 해서도 안 된다. 한결같이 단호한 태도로 ‘나는 당신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는 이해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고 왜 자신이 그런 망상을 갖게 되었는지 통찰해 주고 분석해 주는 정신적 치료가 필요하다. 그리고 어떤 경우보다 가족치료, 특히 부부치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부부치료에 들어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만큼 불신으로 꽉 차 있으므로 실제로 정신과에서는 가장 치료가 힘든 병으로 분류하고 있다.

 의심으로부터의 해방
 주자(朱子)는 의심의 유익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커다란 의심은 크게 진보하게 하고 작은 의심은 작게 진보하게 만든다.의심이 없으면 진보할 수 없다.” 즉 의문에서 나오는 의심이 인류를 진보하게 만든다. 그래서 논어에도 “의심스러운 것은 질문하라.” 하였다. 그러므로 의심은 결점이 아니다. 다만 의심의 방향이 문제다. 그리고 늘 의심하면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결점이다.
 의심에 대하여 옛 선인들이 남긴 값진 교훈들이 있다. “남을 잘 의심하는 사람은 자신도 남에게 의심을 받고, 남을 잘 경계하는 사람은 자신도 남에게 경계를 받는다.” 또 “의심하면서 하는 일은 공적(功績)을 올릴 수 없고, 의심하면서 행동하는 것은 명성(明星)을 얻을 수 없다.” 덧붙여 “처음부터 의심나는 사람은 쓰지 말고, 이미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는 <명심보감>의 말씀은 사람을 쓰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금과옥조 같은 값진 교훈이다.